[에세이]
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벌써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09년 9월 25일 음력(8월7일) 느닷없이 다가온 기다림·두려움·공포! 꿈자리까지 다가와 무전기를 가슴에 품고 소식을 기다리던 나를 제치고 무전기를 빼앗아 텐트 밖으로 달아났던 창 모자를 쓴 남자! 악을 쓰며 소리쳐 따라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 '제발 우리 동생들에게 연락 올 거니 돌려달라' 며 목메어 외쳐도 뛰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던 그 모습! 아직도 뇌리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잊지 않고 억누르고 있던 기억의 파편을 꺼내 들자 또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9월 14일 저녁 조령산 절골 입구 야영장으로 충북산악구조대, 직지원정대, 한백산악회, 백두산악회, 직지알파인클럽 등 산악인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모처럼 만난 산 동료나 자주 본 동료 할 것 없이 정겹게 인사를 한다. 미래를 약속한 한 쌍의 산 동료도 와 있다. "저녁 9시 추모제를 할 예정이니 다들 모이라" 한다. 애써 외면한 추모상으로 눈길을 돌린다.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힌다. 상에 두 악우가 함께 찍은 다정한 사진과 '우리 가슴속의 진정한 알피니스트. 히운출리의 별이 된 종성· 준영을 그리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필자가 해야 할 추모사 순서다. 지금까지의 진행과 앞으로의 과정을 차분히 설명하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가슴속 응어리가 올라와 목을 매친다. 잠깐 숨을 고른다. 또 다른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모두들 숙연해 진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가슴속 깊이 새겨진 아픔·슬픔·기다림의 파편을 갈아 낼 순 없는가 보다.

우리 선조의 창조성이 고스란히 담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直指)'를 세계에 알리고자 떠난 등반! 그 이름 더욱 빛나게 하려고 시도한 알파인 등반! 셀파의 도움 없이 대원들 스스로 개척 초등 해 명명한 히말라야에 우리 이름으로 새긴 단 하나의 봉우리 '직지봉(JIKJI Peak)!' 사람의 발길 흔적이 없는 히운출리 북벽에 새로운 '직지 루트(JIKJI Rute)'를 개척하려다 영원히 그곳에 남아 있는 민준영 등반대장, 박종성 대원! 그들의 최고의 알피니스트였으며, 우리의 귀감이었고,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다.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청주시는 청주의 자랑 '직지(直指)를 세계에 알리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 한' 직지원정대 두 대원을 추모·기억하고자 흥덕구 운동천의 양병산 직지산책로 아래 기억의 조형물을 설치하고자 결정했다. 우암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위치 할 조형물은 직지원정대가 추구했던 지역사랑과 등반을 통해 나타난 창조의 숭고함이 담겨있을 것이다. 청주의 상징이 된 히말라야 '직지봉(JIKJI Peak)'을 새기고 직지봉을 개척한 시민이자 등반대원을 기억하는 것은 청주시가 시민과 함께 상생하는 새로운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추모를 넘어 기억의 조형물을 만들어가는 청주시의 결정은 매우 적절하고 시의적이다. 감사를 표한다.

어김없이 한가위는 다가오고(물론 이글은 추석이 지나고 지면에 실린다.) 두 악우를 가슴에 묻은 산 동료들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차례상을 차린다.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새기며 '추석절 연휴 히말라야의 별이 된 악우들과 만년설산을 함께 누빈다.' 그리고 내년 함께 꿈꾸던 히말라야에서 등반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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