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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연휴의 화두는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였고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종전선언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누군가는 완전한 비핵화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더 나아가 통일에 따른 새로운 성장기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대와 설렘 가득한 반응 속에서도 내 귓전을 두드린 것은 한 노인의 눈물 머금은 목소리였다. “너무 늦었다. 나에게는, 우리 같은 이산가족 1세대에게는 시간이 없다. 좀 더 빨랐더라면…” 목소리의 주인은 스무살 무렵 1·4후퇴를 겪으면서 남한땅을 밟은 뒤 가족들이 있는 함경도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남한에서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매 명절마다 혼자였을 것이다.그에게 고향 얘기를 물을 때면 항상 목 메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때면 고향에 대한 언급조차도 그의 오랜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 아닐까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소식은 알지 못하고 동생 둘은 모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들었지만 조카들이라도 만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이산가족 상봉 추첨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항상 체념한 듯 말하면서도 상봉에 대한 얘기나 통일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잔뜩 들떴던 그. 그에게 희망고문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지속됐을까.

대전과 충남에는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고령의 이산가족이 2990명이나 있다. 이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는 4명에 불과하다. 운명을 컴퓨터 무작위 추첨에 맡긴 뒤 끝내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3년 사이 ‘그’와 같은 이들은 400여명이나 줄었다. 그의 말대로 그들에겐 시간이 없다.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방식에 변화를 줘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염원은 고향땅을 밟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찾아올 추석, 언젠가 북녘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 그들의 모습을 꿈꿔본다.

조선교·충남본부 취재부 mission@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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