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경 충북여성재단 연구위원

과거 미혼남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던 데이트폭력이 최근 청소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범죄 유형도 신체적 상해나 살인에 이르기까지 날로 흉악성을 보이는데 그 중 여성피해자가 74.2%(경찰청, 2018)에 이른다. 충북은 81.3%가 여성으로 전국수준보다 더 심각하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로 두 가지 측면에서 타 범죄와 다른 특성을 갖는다. 첫째, 사건이 은폐되기 쉽다. 사건의 은폐는 피해당사자가 이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건발생이 공공장소나 길거리 등 공개적인 장소보다는 본인이나 가해자 거주지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면위로 드러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수치화된 통계자료는 그러한 은폐된 사건이 배제된 수치에 불과하다.

둘째, 보복성이 짙어서 사건이 지속되거나 심각한 양상을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범죄에 대해서 보다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은 적극적 체포제도, 영국은 클레이법 등을 통해 사적영역에서 발생한 폭력일지라도 결코 사적 문제가 아님을 명문화하고 피해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운용 중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관대하다. 가정폭력 발생 시 가정보호 사건으로 처리돼 가해자는 가정으로 복귀하는 반면, 피해자는 위험을 피해 도피를 감행해야 하는 것에서 그러하고, 지속적으로 스토킹에 시달려도 가해자에게 벌금 8만원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그러한 예다.

데이트폭력은 이 마저도 해당이 되지 않아 가해자를 제지할 마땅한 근거법이 없다.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입고 그 범죄 입증이 명백해야 형법의 제재를 받을뿐 그야말로 무법지대인 셈이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국회가 1999년 이후 꾸준히 발의했지만 국회의원 임기만료와 함께 모두 폐지·철회됐다. 지난 2월에 이르러서야 정부합동발표(법무부·여성가족부·경찰청)를 통해 정부의 주요부처가 전면에 나서면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 강화와 경찰의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는 등 법적 근거를 요구하는 항목이 신설된 점은 그나마 진일보한 결과다.

돌이켜보면 사실상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관대함이 아니라 오히려 가혹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체적 상해는 차치하고 심리적 상흔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친밀한 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터부시돼왔던 여성의 안전이 이제는 더 이상 사회의 관대함 속에 방치되지 않길 바란다.

연인관계에서 발생한 폭력범죄를 단순한 사고로 이해하면 안된다. 인식개선이 필요하고 적극 대응이 요구되는 중대한 사건으로 다뤄야 한다. 폭력을 당하고도 6%에 미치지 못하는 신고율(충북여성재단, 2018)이 범지역적 인식개선이 지금 우리지역에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말해준다. 최근 매스컴을 오르내린 사건사고에서조차 심각한 신체적 상해나 살인사건 중심이어서 데이트폭력의 다양한 행태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데이트폭력이 무엇인지, 지역에서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는 無법지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응전략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사랑하고 안전하게 이별하는 시대, 우리와 후세대 안녕을 위해 반드시 만들어내고 지켜야 할 시대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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