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신 충남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

금년 4월 BBC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포용도는 20%다. 조사대상 27개국 가운데서 헝가리를 제외하고 가장 낮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포용 국가’를 선언했다. 청소년과 아이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늘리겠다는 구상도 발표했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공연히 울컥해진다. 아이들의 미래의 삶이 안타까와서다. ‘포용국가’를 발표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가올 초고령 사회에 대한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적은 생산인구가 보다 많은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사회의 도래로 어른들은 당황하고 있다. 그리하여 ‘포용국가’라는 마음 짠한 짐꾼 키우기 프로젝트를 개발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말대로 ‘의문의 1패(敗)’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로 시작되는 청소년 헌장에는 9개의 책임과 12개의 권리가 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의 권리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특히 여가와 문화예술 향유 권리는 더욱더 그렇다. 낮에 어른들을 위해 개방하는 주민센터도, 노인정도, 체육시설도 하교 시간이면 굳게 문을 닫는다. 마을회관에도, 동네 체육쎈터에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마을의 미래며, 미래의 생산인력인 아이들은 어둑한 공원이나 PC방, 때로는 폐가에 모여 ‘어둠의 자식’으로 변한다. 많은 예산이 마을의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에 배정되고, 마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쓰이지만 정작 청소년들을 위한 예산은 없다. 노인은 있되 어른은 없는 사회, 주장은 있되 포용이 없는 사회를 아이들은 보고 배운다. 지금 어른들이 보여주는 포용은 훗날 더 큰 포용을 낳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 몫으로 조금 떼어주는 예산이, 조금 양보한 공간이, 교육봉사로 투자하는 약간의 시간이 훗날 아이들의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인(人)자를 기대며 사는 모습의 상형문자라고 한다. 그러나 아래서 기댐을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겠는가? 나는 사람 인(人)은 큰 사람(ノ)이 작은 사람(?)을 포용하고 감싸주는 형상을 딴 문자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더 나이 많은 자가, 더 지위가 높은 자가, 더 지혜로운 자가, 더 경험이 많은 자가, 더 권력이 있는 자가, 더 가진 자가 너그럽게 감싸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人間)이다.

사실 그동안 국가나 지자체의 청소년에 대한 투자는 다른 연령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선거권의 유무에 따른 정치적 홀대는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손익계산이 빠른 기업들이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청소년들에 대한 투자는 생존전략이다. 너무 얄팍해서 속이 훤히 보여도 좋으니 2019년에는 미래의 짐꾼인 청소년을 위한 예산, 공간, 시간을 과감하게 투자해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과 사업들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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