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 지나친 조심을 하는 것>

초(楚)의 굴원(屈原)은 고대 중국이 낳은 정력적인 시인으로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초사(楚辭)에 그 비분(悲憤)하는 감정을 전하고 있으나, 실인즉 그는 시인이라기보다는 나라를 사랑하고 정의(正義)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살았던 것이다.

전국시대의 말엽(末葉) 가까운 이 시대는 진(秦)이 위세를 떨치고 있어 이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초(楚)와 제(齊)의 두 나라 정도였으므로 진은 초와 제가 결함하지나 않나 하고 언제나 신경을 쓰고 있었다.

굴원은 친제파(親齊派)의 영수로서 초·제 동맹을 강화하도록 헌언(獻言) 했으며 초회왕(楚懷王)도 처음에는 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왕의 총희인 정수(鄭袖)나 영신(아첨하는 신하)인 근상 등은 전부터 삼려대부(三閭大夫-초나라 왕조의 소씨·굴씨·경씨의 족장)인 굴원(屈原)을 눈엣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노린 것이 그때의 진나라 재상인 장의(張儀)였다. 그는 정수들을 매수하여 친진파(親秦派)로 만들고 그 결과 근상 등이 계획대로 참언(讒言)을 해 굴원을 국정에서 멀리 몰아내고 말았다. 굴원이 31세 때였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이때 회왕은 제(齊)와 절교를 하면 그 대가로써 진의 6백리에 걸친 당을 떼어 주겠다는 말을 장의에게서 듣고 그 말대로 제와 절교를 했으나 이것은 장의의 새빨간 거짓말로 크게 노한 회왕은 곧 진을 공격했다.

그런데 도리어 진에게 패하여 토지를 빼앗기고 그 때문에 후회한 회왕은 다시 굴원을 등용하여 친선사절로서 제 나라에 보냈다. 회왕은 왕자 자란이 권해 진으로 떠났다가 포로가 되어 이듬해 객사하고 말았다.

굴원시로 “뜨거운 국(열갱:熱羹)에 놀라 냉체를 부는 것은 세상 사람의 약한 마음이다. 나 홀로 하늘에라도 오르는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 절조를 변치 않으리”, “뜨거운 국에 놀라 회를 분다”란 말은 앞에 말한 “뜨거운 국에 놀라 냉채를 분다”에서 나온 것으로 갱(羹)은 뜨거운 국, 회(膾)는 잘게 썬 날고기, 제는 초나 간장으로 버무린 잘게 썬 야채로 회(膾)나 제는 냉채다. 따라서 한 번 실패한 것에 혼이 나서 도가 지나친 조심을 하는 것을 뜻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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