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태 ETRI 미래전략연구소장

‘성장’은 개인, 가계, 기업, 국가 등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큰 이슈다. 선진국에서도 이슈이고, 중·후진국 어디에서도 큰 이슈다. 영어로는 이노베이션(Innovation), 한자로는 ‘가죽을 바꾸어 새로 거듭난다’는 뜻의 ‘혁신’(革新)과 성장의 합성어 ‘혁신성장’이 작금에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묵은 제도나 방법을 바꾸어 새롭게 하면 성장하는가? 어떻게 해야 성장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도 많고 논란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과거 정보통신 기술로 소위 ‘혁신성장’을 이룩한 경험이 있다. 바로 반도체 기술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기술이다.

반도체 기술 개발을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산업은 신발, 의류 등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이었다. 당시 첨단산업 분야 반도체를 개발·생산하는 것은 크나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정부출연연(ETRI), 대학, 산업체가 혼연일체 되어 4K(1983), 256K(1984) 메모리 반도체(DRAM) 기술을 개발하고, 1986년부터 1993년 사이 ‘초고집적반도체기술 공동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선진국에 비해 10년 이상 뒤쳐졌던 DRAM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1999년 이래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국가 주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고, 지난해에는 세계 DRAM 시장의 75%를 국내기업 제품이 차지했다.

CDMA 역시 정보통신(ICT) 기술을 통한 또 다른 산업혁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국내 이동전화 서비스는 1984년에 처음 도입됐으나, 거의 대부분의 무선통신시스템과 휴대전화는 고가의 미국 및 일본 제품이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ETRI와 국내 산업체가 미국 퀄컴사의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CDMA 상용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1995년 9000억원 수준이던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생산액은 CDMA가 상용화되고 10년 후인 2006년에 29조 원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노하우와 인적·물적 기반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국내 기업이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 25%를 달성하는 기반이 됐다. 이처럼 ICT기술은 국가 경제와 산업에 변혁을 가져오는 마중물이 됐다.

이 두 가지 ICT ‘혁신성장’의 공통점은 아날로그 전자기술에서 ‘디지털 정보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낸 것들이다. ICT 기술이 앞으로 혁신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새로운 산업 혁신과 변혁이라 일컫는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의 ICT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사회는 모든 사물과 사람이 연결돼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보와 데이터로 상호 소통하는 초연결사회이다. 초연결로 얻어지는 정보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해 지능화를 구현하는 ‘초연결·지능화’로의 변혁기에서 새로운 혁신성장의 기회들을 포착할 수 있다. 이를 구현하는 핵심 요소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연결하는 네트워크(N)와 이로부터 얻어지는 데이터(D), 그리고 이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통찰(Insight)을 제공하는 도구인 인공지능(A)이다. 따라서 향후의 경제·산업혁신에 핵심인 이들 세 가지 요소(D.N.A)에 대한 기술 경쟁력 확보가 큰 관건이다.

아쉽게도 D.N.A 분야의 국내 산업기반은 취약하다. 미래를 대비한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반도체와 CDMA 기술개발 때와 마찬가지로 기술 노하우와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업모델이 큰 장애가 된다. 따라서 미래 혁신성장의 핵심이나 개발 성공에 대한 위험도가 높고 기술의 난이도가 높은 도전형의 D.N.A 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출연연을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개발을 시작함으로써, 본격적인 기술수요가 발생하기 전에 원천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국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