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자녀를 출산하고 키울 때나 남녀 간의 사랑이 시작될 때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을 줄이고, 여성은 에스트로겐을 줄인다. 자녀를 향한 사랑의 시작이며, 이성을 향한 배려이다. 또한 옥시토신,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이 넘쳐 나면서 사랑과 관대함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이런 호르몬 변화가 심하면 출산 후 산후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 남성호르몬이 너무 떨어져 신혼 첫날밤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다 아는 것이며, 자녀를 키워본 부모는 한번쯤 느껴본 경험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곤궁한 타자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는 것도 아마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이 측은지심이고, 이타적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선 일상에서의 이타적 사랑, 특히 의견이 다른 상대, 경쟁자나 적에게 보이는 관대함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덕목이다.

관대함은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갖춰야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만큼 사람마다 차이가 많아 이타성이 풍부한 사람도 있고 협소한 사람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옥시토신, 바소프레신과 관련된 유전자에 따라 사람차이를 말한다. 하지만 이타적 사랑, 관대함은 끊임없는 인격 수양과 삶의 현장에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형설의 공으로 만들어지는 덕목이다. 공자는 하늘의 뜻을 스스로 아는 시기를 지천명(知天命), 50세라고 말하였다. 아무 때나 깨우치는 것이 아니고 어른이 돼서야 알게 되는 덕목이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40대에 불후의 대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통해 상류 사회의 위선적 삶을 고발한다. 하지만 자신 또한 안락한 삶과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선이 가득 찬 이중성을 보인다. 즉, 중년의 위기였다. 해답은 바로 농부에게서 찾았다. 대부분 문맹인데다 가난했지만 삶의 철학은 톨스토이의 그것보다 고결했다. 톨스토이는 이 해답으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와 '참회록'을 지필한다. 중년의 위기를 겪고, 50세가 넘어서야 가난한 농부는 알고 있는 사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철이 든 것이다.

중년이 되면 인간의 호르몬과 생존체계가 변한다. 성호르몬도 감소하고, 사랑과 관대함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억제하던 생존시스템 또한 누그러진다. 자기성찰의 시간이 조성되면서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력, 관대함이 생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모두가 '꽃중년'으로 거듭나기 위해, 즉 80대 혹은 그 이상의 생존을 위해 더 준비하고 더 승리해야 한다. 여전히 코티졸이라는 생존시스템 호르몬을 필요로 하고, 남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 현대인들은 톨스토이 40~50대처럼 글로서, 말로서 상류사회의 위선을 고발하지만, 자신만은 안락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중성에 포로가 되었다. 자기 성찰은 이미 허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류의 가치인 사랑과 자비를 말하는 성직자 혹은 종교를 믿고 따르는 신자, 정치 지도자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위해 훌륭한 사상적 가르침을 표현하지만 그에 대비되는 행동들은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최근 신문에서 볼 수 있던 조계종단 사태, 교회 세습 문제, 미국 신부의 추행 은폐 소식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살아보니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는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말도 같은 것이다. 내 판단은 보편적인 진실이기에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는 허구 속에서 살고 있는, '어쩌다 어른'이 된 현대인들의 표상이다.

바야흐로 백세시대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답을 얻지 않고선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릴 수 있다. 이를 깨우치기 위해 불교에서는 '돈오돈수(단박에 깨우치고 완성)'와 '돈오점수(단박에 깨우치고 수련함)'의 경지를 말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했다. 사실 관대함, 이타적 사랑은 타인을 위한 것이지만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모두가 보이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