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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단상(伐草斷想)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8년 09월 14일 금요일 제22면     승인시간 : 2018년 09월 13일 18시 30분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처서가 지나고 나니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요하던 산천 이곳저곳에서 굉음을 내며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옛날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어디 감히 조상님의 묘에 불경한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성의 없이 기계를 들이댄단 말인가. 산소를 명당자리에 써야 자손이 발복한다는 고정관념에 형편이 조금이라도 허락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호화분묘에 정성을 다한다. 산소관리를 잘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고, 어른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산소를 보면 예사롭지 않으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벌초는 조상 묘의 풀을 베어 정리하는 풍속이다. 금초(禁草)라고도 한다. 후손들의 정성을 표현하는 전통이다. 과거에는 무덤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벌초할 때가 되면 그동안 소원했던 집안 친척들이 모여 우의를 다지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가친척이 모여 대규모로 벌초하는 풍습이 줄어들었다. 관리인을 두거나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집안도 각자 바쁜 생활로 조상 묘에 벌초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동안 일가친척이 모여 돌보던 조상 묘를 올해부터 대행업체에 맡겼다. 대행업자와 함께 능선을 넘고 우거진 풀을 헤치며 1년 만에 찾아보는지라 산소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험한 산길을 올라 겨우 찾은 산소는 풀이 우거지고, 흙이 패고 여기가 산소인가 싶을 정도다. 그렇다고 자주 찾아올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면 변명이라 할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가치관이 변해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매장문화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늘어나는데 죽은 자에게 할애되는 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매장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은 아직 화장이나 그 밖의 장례문화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집안만 해도 그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대립되는 양상이다.

어른들은 아직도 매장문화를 선호하는 편이고 젊은 층들은 좀 더 간편하게 화장이나 수목장의 제도를 받아들여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나라마다 환경과 문화적 차이로 여러 형태의 장례문화가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도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할 때다. 요즈음은 납골당을 선호하던 때를 지나 수목장이 세간에 이목을 끌고 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은 때가 되면 소멸하고 다시 환경적 요소가 마련되면 생성되는 순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산림청에서도 권장하는 수목장은 나무의 뿌리 주위에 골분을 묻어주는 장법으로 고인이 나무와 함께 상생한다는 자연회귀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또한 묘지 시설이 아닌 숲 자체로 인식돼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무분별한 묘지사용으로 훼손되는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숲을 지속적으로 가꾸고 육성해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산꼭대기 힘겹게 올라와 200여년이 지난 기억에도 없는 조상님의 묘를 벌초했다. 이제 조상님을 자연으로 보내드려야 할 때가 됐다. 우리도 삶을 마감하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 우주 섭리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빨리 자연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수목장이 여러모로 좋은 방법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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