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강도묵 대전시 개발위원회장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던 폭염이 사라지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우리 곁을 에워싼다. 하지만 추석에 대한 이야기는 별반 없다. 설레는 기대감도, 뭔가가 변화의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매듭을 향한 소망도 없다.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은 일상의 지친 영육을 달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매듭을 만들어 즐겼다. 음양의 이치에 따라 양수(陽數)인 홀수가 겹친 날은 이름을 달아주고 일상을 내려놓게 하였던 것이다. '1'의 중복은 설날, '3'의 중복은 삼짇날, '5'의 중복은 단옷날, '7'의 중복은 칠석, '9'의 중복은 중양절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은 이와는 다르다. 1년 중 하늘이 가장 맑고 청명한 계절에 뜨는 달은 더욱 크게 보였기에 누구나 자신의 소망처럼 그 달을 품고 싶었다. '한가위'라는 뜻도 '한'은 '크다'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말이다. 삼국사기에는 한가위의 유래가 전한다. 신라 유리왕은 6부의 여자들을 둘로 나누고, 두 공주에게 맡겨 길쌈 경쟁을 시켰다. 한 달 후에 그 결과를 보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하게 했다. 이같이 추석은 신라시대 이후 우리민족에게 가장 큰 명절로 지켜왔던 것이다.

농경민족인 우리 민족은 봄부터 지은 곡식과 과일을 맨 먼저 조상님께 천신(薦新)했다. 수일 동안 햇곡으로 제물을 마련하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빚은 송편으로 아침 차례를 올렸다. 차례 음식을 가족이 나누어 음복한 후 성묫길에 나섰다. 성묘 후에는 갖가지 놀이도 했다. 풍악을 따라 동네를 돌며 이루어지던 거북놀이, 소놀이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줄다리기와 씨름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는 계기가 됐다.

어린 시절 추석이 떠오른다. 여름 내내 감나무 밑을 뒤지며 도사리 감을 주워 먹다 보니 광목으로 지은 내 고의적삼은 얼룩이 짙게 들었다. 아무리 비벼대도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묻혔으니 불평도 늘어놓지 못했다. 이런 나의 초라한 모습은 추석빔이 해결해 주었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어머니는 추석빔은 챙겨 주셨다. 추석 전날 밤엔 밖에 나가 있던 형들이 모두 모였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도회지의 생활을 형들은 내게 개선장군처럼 늘어놓았다. 이제 나이 들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란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요즈음의 우리의 한가위 명절은 어떠한가. 고향이 그립고, 부모 형제가 보고 싶어 찾아가던 귀성의 행렬은 영혼을 잃은 차량의 행렬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귀성보다는 여행의 행렬이 더 많고, 명절 전날 밤의 대화는 유산의 갈등으로 이어져 싸움을 하기도 한다. 차례를 마치고 같이 음복하면서 하루를 즐기기는커녕 차 키부터 찾는 것이 우리집 추석 풍속도는 아닌지 조용히 살펴볼 일이다.

명절을 기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서로 배려하던 우리의 가족애를 되찾아야 하겠다. 추석 명절이 되어도 갈등 속에서 벌초마저 하지 않아 자손 없는 무덤이 되고, 불효하는 자식을 둔 무덤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한 명절이길 기원한다. 문득 옛날이 그리운 것은 내가 심약해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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