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전국시대다. 서쪽의 웅국(雄國)인 진의 침략전에 동방의 제국이 있는 지혜와 힘을 다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때의 이야기다. 조(趙)는 진군(秦軍)에게 포위되고 왕의 일족으로 평원군(平原君)같은 천하에 이름을 떨친 현자도 있었으나, 진의 소양왕이 이끌고 온 운하(雲霞)같은 대군을 감당하지 못해 수도 한단성(邯鄲城)의 운명도 끝장에 가까워 졌다.

아무튼 쥐 한 마리의 값이 전도(錢刀) 30매가 될 정도로 식량 사정은 급박해져서, 유일한 타개책은 타국의 원병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물론 제국에 구원을 청하고는 있었으나 서한을 보낸다는 그런 시간이 걸리는 수단으로는 효과가 오르지 않아 어디서도 반응이 없었다. 멸망직전 상태에 있는 조(趙)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가 만에 하나 실패를 하면 강한 진의 창끝이 다음에는 내개로 돌려 질것은 뻔한 일이다. 이 약육강식 시대에 물에 빠져 허덕이는 남을 구하기 위해 그저 수영에 자신도 없는 자가 몸을 날려 뛰어들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평원군 자신이 초왕(楚王)을 설득하게 됐다. 평시부터 평원군과 그리 사이가 좋아 않았던 조(趙)의 효성왕(孝成王)의 표정은 어두웠다. “조나라의 운명이 걸린 사신이다. 부탁한다” 평원군은 3000명이나 되는 식객 중에서 20명을 뽑아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이 대임(大任)에 적당한 인물로 19명까지는 무난히 뽑았지만 나머지 한명에서 막히고 말았다.

이리저리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 노수(毛遂)라는 식객이 나타나 “꼭 나를…”하고 자천(自薦)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다 할 재주도 없어 극히 눈에 띄지 않는 사나이였으므로 평원군도 놀랐다. 이렇게 해 조국(趙國)은 망국의 위기를 면했으나 사람을 보는 눈이 밝다고 자랑하던 평원군도 이번만은 손을 들었다. “모선생에게는 큰 실례를 했군요. 모선생의 세치혀는 백만대군보다 강하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평원군이 반성했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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