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초서롱. '책 등에서 남의 지식이나 정보를 베껴 모아두는 바구니’다.

저서롱. '초서롱에 들어있는 각종 재료를 토대로 자신이 직접 지은 글을 담아놓는 바구니'다.

두 바구니의 주인공이 조선 후기 실학자 순암 안정복(安鼎福)이다. 당시 출판된 책이 부족한 데다 값도 비싸 원하는 책을 구하기 어려웠다. 필사가 대신했다. 책 전체를 베끼기도 하지만 시간의 한계로 대부분 필요한 부분만 골라 베꼈다. 그가 쓴 시를 보면 초서롱과 저서롱에 함축된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몸에 깊은 병이 있는데 책이라면 그리 좋아, 매번 귀한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만 하네, 그러나 돈이 없어 사지 못하고 그저 베낄 수밖에 없네. 온종일 수그리고 앉아 베끼고 등불 아래에서까지 계속이네. 중략. 남의 손까지 빌어 그 책이 끝나야만 말지. 하략"

"책 하나도 쌓아둔 게 없다가 몇 십 년 갖은 애를 써서 전심전력 구해들인 끝에 경사(經史)와 자집(子集)까지 대강 갖출 건 갖추어 두고, 중략. 몇 해를 그리 읽고 나니 책은 백 권, 천 권도 넘고 가슴속엔 무엇이 있는 것 모양 구불구불 자꾸 나오려고 해서 에라 글 한번 써보자 하고. 하략."

초서롱에서 수년 동안 묵은 재료들을 서로 융합하더니 두 권의 책이 저서롱에 담겼다. ‘동사강목’과 ‘잡동산이’. ‘동사강목’은 단군 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우리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이 출판되자 학자들은 우리 역사와 국토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잡동산이’는 방대한 저술이지만 체계가 서 있지 않아 제목처럼 잡동사니 지식들을 망라했다. 어찌 보면 초서롱에 들어있던 각종 재료들을 그대로 수록한 듯하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다. 가치가 있거나 필요한 재료는 메모를 하거나 모아 두어야 한다. 이렇게 모인 수많은 재료들이 비교, 분류, 융합, 첨삭 등 상호작용해야 또 다른 재료가 탄생한다, 이것이 새로운 지식총체인 저술이다. 안정복은 이렇게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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