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한 법정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인턴사원에게 성희롱해 해고당한 부장이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 판결이 다뤄졌었다. 부장은 카카오톡으로 자신의 가슴털이 찍힌 사진을 보냈고, 밤마다 “넌 허리는 가는데 힙(엉덩이)은 너무 커” 등의 말로 성희롱했다. 원고는 법정에서 주책없는 농담이었다고 해명했고, 변호사도 이 말이 단순히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였다고 변호했다. 증인으로 나선 직장동료들은 “원고가 농담을 즐겨하지만 특별히 수치심을 느껴본 적은 없다. 인턴사원이 매사에 예민하고 조직에 적응을 못했다”고 부장 편에 서서 증언했다.

재판은 어떻게 끝났을까. 재판부는 “해고가 정당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문에서 “직장인에게 해고란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성희롱 피해자가 받는 고통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권력을 이용한 지속적인 성희롱은 사람 자존감과 마음을 망가뜨리고 직장을 지옥으로 만든다”고 판단했다.

드라마는 SNS와 사진 한장으로 해고한다는 다소 과한 설정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본다. 문뜩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무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 관계는 맞지만,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전시가 시·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성희롱 직접피해자 절반은 성희롱을 당해도 참고 아무 대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계속 만나야 하는 직장 생활에서 관계가 어색해질 것을 두려워했고, 또 문제제기를 한다한들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도 많았다.

용기를 갖고 문제를 제기해도 정확한 증거를 내밀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 피해자는 여전히 농담을 웃어넘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직장초년생이 되기 십상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그런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다한들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싶다.

홍서윤·대전본사 정치사회부 classic@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