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나는 뇌가 아니다'·'심야의 철학도서관'·'로봇도 사랑을 할까'

AI·뇌과학에 지배당한 21세기 정신철학은

신간 '나는 뇌가 아니다'·'심야의 철학도서관'·'로봇도 사랑을 할까'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감성적인 영화 '그녀'의 주인공은 지능이 매우 높은 소프트웨어와 사랑에 빠진다. 닐 블롬캠프 감독 영화 '채피'에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음을 지닌 로봇과 인간의 마음을 데이터로 바꿔 로봇에 이전함으로써 죽음을 면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뤽 베송의 '루시', 월리 피스터의 '트랜센던스', 알렉스 갈랜드의 '엑스 마키나' 등의 영화도 비슷한 얘기를 다룬다.

이제는 흔한 이런 상상력에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이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이고, 데이터로 구성된 인공지능(AI)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깔렸다.

그러나 오늘날 대세로 자리 잡은 뇌과학과 AI를 향해 던지는 철학자들의 물음은 무겁다.

독일 신예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최근 저서 '나는 뇌가 아니다'(열린책들 펴냄)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뇌 혹은 중추신경계와 동일시하는 현대의 뇌과학에 반기를 든다.

저자는 뇌과학이 인간의 중추신경계와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늘리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인 '신경강박'과 뇌의 진화 과정을 알아야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다윈염'이 조합된 '신경중심주의'라고 비판한다.

저자도 뇌가 우리가 의식 있는 삶을 살아가기 데 필요조건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에는 뇌라는 물질로는 다 환원시킬 수 없고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 정신은 자화상을 제작하고 그럼으로써 다수의 정신적 실재들을 산출한다.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 열린 구조를 가지며, 그 구조를 신경생물학의 언어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견해를 '신실존주의'라 명명한다. 이제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탐구를 철학이 아닌 뇌과학에 맡겨야 한다고 믿는 현대인의 생각을 극복해야 할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본다.

가브리엘은 24살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28살에 독일 본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에 오는 촉망받는 철학자다.

그는 독일 관념론의 전통 위에서 뇌과학과 진화론을 앞세운 현대적 유물론에 대한 저항 전선을 구축한다.

전대호 옮김. 456쪽. 1만8천원.


두 명의 미국 철학자가 쓴 '심야의 철학도서관'(글항아리 펴냄)도 첨단 과학의 시대 인간 의식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야기는 깊은 밤 대학 도서관에서 대학원생들이 어떤 냄새를 맡는 데서 시작한다. 같은 냄새를 맡고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법대생 톨렌스와 철학도 포넨스의 대화는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전한다. 여기에 누스, 벨라, 아니무스, 에피스타인 등 여러 등장인물이 가세하며 이야기는 복잡하고 흥미진진해진다.

대화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밤 계속되는데 참가자들은 계몽주의 시대부터 현대까지 전개된 의식에 관한 주요 이론과 논증을 놓고 토론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인간 의식을 과학적으로 탐구될 수 있는 물리적 과정으로 보는 '물리주의'가 주된 생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의식의 주관성은 과학적 방법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다는 반대 견해도 상존한다.

책은 인간의 의식에 관해 다양한 견해를 지닌 등장인물들 입을 통해 물리주의와 반물리주의를 논쟁시키지만 답을 도출하진 않는다. 독자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할 뿐이다.

저자인 토린 얼터 앨라배마대학 교수와 로버트 J.하월 서던메소디스트대학 교수는 인간 의식 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한 심리철학자들이다.

한재호 옮김. 220쪽. 1만4천원.


프랑스 작가와 철학자가 공저한 '로봇도 사랑을 할까'(갈라파고스 펴냄)는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자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 사회에 제기하는 쟁점들을 다룬다.

앞서 두 권의 책에서 문제 삼은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관한 '물리주의'를 기본 전제로 삼아 그 위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논의를 펼친다.

트랜스휴머니즘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책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팽팽히 맞서는 두 저자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저자 중 로랑 알렉상드르는 작가이자 의사, 기업 경영자로 AI 발달과 트랜스휴머니즘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트랜스휴머니스트다. 그는 인간이 기계에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 AI를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른 한 명 저자는 기술철학자인 장 미셸 베스니에 파리 소르본대학 철학과 명예교수다. 그는 인간의 역량을 향상하는 것은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만 기술이 모든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며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철학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언젠가는 기계들이 감정이나 성욕처럼 우리가 가장 내밀하다고 여기는 것에도 반응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가상현실은 실재와 구분하기가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양영란 옮김. 216쪽. 1만2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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