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포럼] 
권승준 ETRI 지식이러닝연구그룹 선임연구원

일상생활 속 과학기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편리함을 주었던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는 순간에 그런 상황이 생긴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맹인(전맹)분들과는 달리 잔존시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내 혹은 다른 큰 도심에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기 위해 만들어진 중앙버스차로와 그 중앙버스차로에 설치된 정류장 그리고 디지털화된 버스도착정보안내기(BIT)는 버스를 타려는 일반 시민에게 편리성과 접근성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그러한 환경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LCD 혹은 LED 장비와 위치기반 응용기술이 접목된 버스도착정보안내기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일반 시민은 바로 앞에서 본인 눈으로 재빨리 버스 도착 정보를 한 눈에 직접 확인하고 빠른 대처를 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애가 발생되는 느낌을 준다.

일반 시민이 스마트폰 어플에서 대중교통 정보를 확인하는 것 보다 정류장에서 본인이 타야할 버스의 위치와 도착 정보를 버스도착정보안내기를 통해 한눈에 파악하는 부분에서 장점을 보이지만, 이 장점이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버스도 사람도 많은 중앙버스차로에 있는 출퇴근시간의 붐비는 버스정류장에선 더욱 번호를 인식하기 힘들어지고, 바쁜 시민에게 도움을 받기도 더욱 더 어려워진다. 본인이 원하는 버스를 찾기 위해서 일반 시민처럼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정류장에 진입해 멈춰선 버스마다 내가 타고자하는 버스가 맞는지 아주 가까이 가서 번호를 직접 확인해야 하다 보니, 번호를 확인하러 가능 중에 버스가 그냥 출발해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버스가 정류장에 진입하면 많은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은 버스를 기다리는 주변사람들에게 본인이 타고자 하는 버스번호를 말하고 버스가 도착하면 본인에게 그 버스를 알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버스를 알려 주기로 한 주변 사람이 정작 본인이 한참 기다렸던 버스가 먼저 오면, 그 버스를 타고 먼저갈 수 밖에 없어 다시 다른 사람을 찾거나 아예 버스타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서울 강남역 중앙버스차로의 정류장을 가본 사람들은 아마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도착한 버스를 타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진입 예정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에서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일부 지자체에서 운영되고 있는 버스 중 정면에 디지털화된 번호판에 추가적으로 버스 차체 옆면에도 디지털 번호판이 생기면서,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버스를 탈 때 주로 시도하는 방법인 차체 옆면에 새겨진 큰 번호판 확인 과정이 더 힘들어졌다.

이젠 저시력 시각장애인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근본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시각증강 생활·안전 콘텐츠 기술 개발’라는 이름으로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버스를 탈 때와 같은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와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한다.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무겁거나 사용하기 불편한 장비가 아닌 안경형의 AR글래스를 개발하고 맞춤형 증강콘텐츠를 적용해 버스를 이용할 때 이전보다 편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 번호를 알려달라고 할 필요 없이 본인이 직접 AR글래스를 착용해 번호를 인식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필자는 벌써부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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