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영동군청 기획감사담당관 주무관

최근 재미있는 판결을 보아 소개한다. 정부와 A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시설물이 국유 토지를 무단 점유한다는 이유로 A지자체를 상대로 임대료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A지자체도 지방국토관리청 등 정부 소속 특별지방행정기관이 A지자체 시유지를 무단점유 한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임대료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A지자체는 국가의 점유권원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독립된 법인으로 서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사례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방세든 국세든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 권위주의 시절 정부와 지자체는 수직적인 관계인 점 등을 고려, 서로 소송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독립된 법인으로써 맡은 역할과 기능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 양자 간에 소송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규정에 의하면 정부는 지자체의 소송사무를 전적으로 지휘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소송은 국가소송과 행정소송 두 가지로 나뉜다. 국가소송은 주민 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고, 행정소송은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관청을 상대로 한 소송이다. 국가소송은 대한민국이 해당 소송과 관련된 행정기관 소속 공무원을 소송수행자로 지정해 소송사무를 진행하게 하고, 행정소송은 해당 관청이 소송사무를 진행하게 하면서 지휘한다. 얼핏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경우 불합리한 부분이 나타난다. 먼저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가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건 지자체 공무원을 소송수행자로 지정, 소송사무를 지휘할 수도 있다. 예컨대 광역지자체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경우다. 국가관리 국도와 광역지자체 관리 지방도에 걸친 지점에서 시설물 하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해 최종적인 배상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쟁점이 됐다. 정부는 광역지자체 도로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을 소송 수행자로 지정해 소송업무를 진행하게 할 수 있다. 광역지자체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했는데 정부는 광역지자체 소속 직원을 소송수행자로 지정해 방어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불합리한 점은 또 있다. B지자체가 자신의 예산으로 지방도로 사업을 진행하던 중 수용보상금 관련 소송이 제기됐다. 이 경우 소송의 유형은 공법상 당사자 소송으로서 행정소송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B지자체는 정부의 소송사무지휘를 받아야 한다. B지자체는 정부로부터 소송사무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송 진행 중 소 취하, 상소제기, 합의 등 독자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관할 지방 또는 고등검찰청으로부터 지휘를 받아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월 발의한 헌법 개정안 제1조 제3항을 보면,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임을 분명히 천명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에 의해 폐기됐지만, 학계·시민단체 등이 강하게 요구하는 지방분권의 패러다임은 거스를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자 대세다. 이처럼 지방의 이익과 정부의 이익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양 자를 조화해 대한민국 전체 이익이 더 크게 될 수 있도록 지방공무원들이 정부에 의해 지방의 이익을 희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당 제도를 정비할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현재의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 분명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