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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이상 기온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폭염특보가 내린 요즈음 기운도 없고 의욕도 상실한 짜증스러운 날이다. 괜한 투정이라고 치부하기엔 불쾌지수가 높다. 특히 더위를 타는 나는 여름이면 땀이 많이 나고 지쳐서 여름 나기가 힘들다. 이렇게 더위가 계속될 때 선조들은 여름을 어떻게 이겼을까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더위를 팔러 다니던 생각이 난다. 사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동네 형들이 하니까 따라 한 것에 불과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여름을 잘 나기 위한 속신이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했고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않고 미리 "내 더위 사가라"하고 친구들을 골려주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또한 여름이면 이열치열이라고 어른들을 따라 냇가에 나가 민물고기를 잡아 솥을 걸어놓고 매운탕을 펄펄 끓여먹던 때가 눈에 선하다.

폭염의 한자는 햇볕 쪼일 폭(暴), 불탈 염(炎)으로 매우 더운 날씨를 말한다. 폭염이 지속되면 어지럼증, 발열, 구토, 근육 경련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온열질환 환자가 자주 발생한다. 폭염은 온열질환 뿐만 아니라 저혈압과 심장질환의 위험도 커지는 만큼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열사병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계속되면서 청주시가 폭염 피해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로,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폭염이 장기화되면서 청주시는 노인들의 안전한 여름 나기를 위해 경로당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지속되는 폭염으로 더위를 먹었는지 무기력하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아내는 여름 보양식으로 삼계탕이 최고란다. 시장에서 닭을 사다 인삼, 마늘, 밤, 대추, 호박씨, 찹쌀 등을 넣고 나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면서 음식 만들기에 분주하다. 옛날에는 잘 사는 집에서나 가능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우리 같은 서민층도 먹을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내의 모습을 보며 삼계탕이 정말 여름철 보양식인지 궁금해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았다. 동의보감에서는 ‘닭고기는 허약하고 여윈 것을 보해주며 속을 따뜻하게 하여 차갑고 습한 기운으로 생긴 소화기능 이상을 치료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삼계탕에 넣는 인삼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 회복을 앞당긴다. 마늘은 강정제 구실을 하고, 밤과 대추는 위를 보하면서 빈혈을 예방하고 호박씨는 호르몬을 원활하게 배출하면서 기생충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삼계탕은 뜨거운 음식이므로 평소에 열이 많거나 뇌심혈관질환이 있는 사람은 먹으면 안 된다’. 책을 열심히 뒤적이는 나를 보며 아내는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무슨 책을 찾아보며 음식을 먹느냐고 구박이다. 그저 막연히 보양식으로 알고 먹었던 삼계탕이 체질에 따라 해가 될 수도, 약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됐다. 또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에 절로 감탄스럽다. 불볕더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제아무리 기세 등등한 폭염일지라도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으리라. 계절은 입추를 지나 처서를 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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