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주 시인·가람문학회장

어느 추운 날 비가 뿌리고 있었다. 외지에 갔다가 몸살감기가 있어서 가까운 약국에서 약 처방을 받으려고 그 동네 조그만 가게에 가서 약국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가까운 약국이 어디 있어요?” 가게 주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왜, 가까운약국을 찾으세요? 큰 길로 한 30분쯤 걸어가면 우측에 가까운약국이 있어요”라고 했다. “30분씩이나 걸어야만 가까운 약국이 있다고요?” 되물었더니 가게 주인은 “네. 나가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우측에 가까운약국이 있다니까요” 나는 할 수 없이 30분 정도 걸어가니 진짜로 ‘가까운약국’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5분 거리 이내에 ‘가까운 약국’이 있었는데 30분 걸어서 ‘가까운약국’으로 간 것이다.

이 유머는 휴일이나 명절 때 그리고 외지에서 갑자기 아이나 어르신이 아플 경우 상비약이 없을 때 찾게 되는 가까운 약국에 대한 유머이지만, 우리에게 띄어쓰기와 띄어서 말하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차라리 ‘이 근처에 약국 어디 있어요?’ 라고 물었다면 30분씩 아픈 환자가 추운데 비 맞으며 걸어야 하는 어려움은 없었을 텐데, 한마디로 웃프다.

요즘 사람들이 나에게 형식과 율격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시조시인이 어떻게 유머 강의를 하고, 유머 책을 낼 수 있느냐며 자주 묻는다. ‘그렇게 궁금하면 500원!’ 시조의 형식은 3·4조를 바탕으로 3장 6구 45자 내외로 이뤄지는 평시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종장 첫 구의 글자는 3자여야 한다. 이러한 시조의 율격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데 자유로운 상상과 문법파괴와 언어유희를 일삼는 유머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해 한 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시조와 유머는 매우 관련성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시조와 유머는 짧다 △시조와 유머는 비유가 있다 △시조와 유머는 복선이 있다 △시조와 유머는 창의성이 있다 △시조와 유머는 반전이 있다 △시조와 유머는 카타르시스(정화) 문학이다 등 열거하자면 한도 없다.

이렇게 문학이 지향하는 많은 부분을 유머 또한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유머의 기법만 안다면 쉽게 시조 창작하듯이 유머도 창작하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시조시인은 언어의 조탁과 언어유희에 능통하다. 그리고 종장의 반전은 시조의 백미다. 따라서 언어의 유희에 능한 시조시인이 순간적으로 재치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데 일반인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다. 특히 유머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많이 활용한다. 유머에서는 이것을 Pun 또는 Wordplay라고 말한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라고 한다. 배(타는 배舟, 신체 배腹, 과일 배梨)와 같이 국어에는 약 3000단어, 한자어에는 약 2만 단어의 동음이의어가 있다고 한다.한자를 많이 알면 유머 구사에도 그만큼 유리하다. 시조는 다른 문학보다 한자 문화 즉 고전과 비교적 가까이 와 있었다. 어쩌면 먼 옛날에 시조와 유머가 같은 피붙이였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인이 유머를 잘 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웃는다는 것은 즐겁다는 것이다. 문학의 본령(本領)도 기쁘고 즐겁게 하고 때로는 슬프게 해서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라면, 유머는 슬픔보다는 기쁨에 치우쳐 있는 긍정의 카타르시스 문학이다. 옛날 우리 선비들은 유머를 해학이라고 해서 농담이나 필담으로 재미있게 즐겼다. 대화시, 강의시, 사회를 볼 때, 연설을 할 때에 유머와 웃음이 터진다면 마음의 벽이 무너지고,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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