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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칼럼]
오덕성 충남대 총장


매년 이맘쯤이 되면 우리 대학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지난 30여 년 간 교단을 지키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노교수님들이 65세 정년을 맞이하여 교단을 떠나는 시간,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며 감사를 드리는 자리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대학에서는 전통적인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희생적으로 가르치며 삶의 귀감이 됐던 노교수님들의 이야기가 새삼 그리워진다.

스승의 모습을 기억하고 삶으로 배웠던 제자들의 존경심은 ‘예전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8월 말이 돼 스승의 애씀을 감사하고 위로하는 노교수님들의 정년퇴임 행사를 볼 때면 여전히 대학에서는 ‘귀한 사제관계’가 남아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지난 5월 초 필자는 미국의 블룸필드(Bloomfield)대학 졸업식에 참여하며 훌륭한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았다. 본 대학은 사회봉사 관점에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결손가정 자녀들을 선발하여 장학금뿐만이 아니라, 생활비를 보조하고 전담교수들이 4년 간 멘토로서 학생들을 지도하여 훌륭한 사회인으로 육성하고 있었다. 그날도 본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졸업하는 대표 몇 명이 손님들 앞의 단상에 나와서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 중 자그마한 흑인 여학생 한명이 나와서 본인의 어릴 적 힘들게 생활해 왔던 성장배경과 대학을 통한 새로운 삶을 설명하는데 필자는 상당히 놀라웠다. 이 학생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10대 후반의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으며 주로 우범지대에서 생활했다. 이 지역은 주변의 사람들이 30세를 채 넘기지 못하고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한 동네인 것이다. 졸업식장에서 이 여학생은 4년 간 대학이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자신을 희생적으로 돌보아 준 노교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이 학생을 맡은 여교수님은 20년 이상 본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암에 걸려 수술과 치료과정을 거쳤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한다.

노교수님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삶을 마무리하도록 위로금을 보험회사에서 받았는데 이것을 보람 있게 사용하기 위하여 기도하던 중 이 여학생을 찾아 장학금을 지정 기탁하고 멘토를 자청했다고 한다.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여학생을 면담하며 친부모처럼 학생을 돌보아 준 것이다.

삶으로 가르치는 병약한 노교수님의 희생을 보며 문제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미래의 여학생이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가지게 됐고 졸업식장에서 대표로 연설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여학생은 병환으로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교수님께 감사하는 눈물을 흘리고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자신과 같이 불행한 환경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며 전해야 될 사명이 본인에게 있다고 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졸업식장에서의 이 장면은 지난 38년 간 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자족했던 나 자신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과연 삶으로 헌신하며 제자들에게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겨줬는지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가 됐다. 이달 말 교수 정년퇴임식을 맞으며 제자들을 삶으로 가르치고 있는 아름다운 노교수의 뒷모습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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