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국진 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까마득한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 것이라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수학이 발달하고,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서 지구가 둥글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급기야 에라토스테네스는 막대기의 그림자를 관찰한 끝에 지구는 둥글다 했고, 지구의 크기까지 정밀하게 계산해냈다. 기원전 240년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구가 정말로 둥글다고 믿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00년이 훨씬 지난 다음이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도 제각각 다르다. 철학이나 사회적 이슈만의 문제가 아니다. 엄정한 사실을 다루는 자연과학에서조차 가치관의 개입이 이뤄지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다. 우리 또한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쌓아온 지혜들을 지식이라는 형식으로 후세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 전달 시스템을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수만 년 동안 축적된 인류의 지혜와 자연의 이치들을 배우고 또 전한다.

지식을 배우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 가치문제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두루 이로운 가치가 있는가 하면 위험하거나 해로운 가치들도 많다. 또 이롭다거니 해롭다거니 논쟁을 하고 있는 가치들도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교육처럼 이념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분야도 흔치 않았다. 세상이 교육을 통해 유지되고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만치 교육은 중요하고 민감하다.

교육을 일컬어 흔히 미래기업(未來基業)이며, 가치기업(價値基業)이라고 한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 가치를 생산하는 사업이라는 뜻이다. 미래 사회에서 사람들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육을 통해 사람과 사회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교육을 위해 어떤 가치를 채택해야 할 것인가를 강요받는 사업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치 선택의 고민은 개인과 국가는 물론이고, 인류의 보편적 관심사이기도 하다. 가치 선택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충돌하게 된다. 가끔 교육 분야에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이럴 때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방식은 논쟁 중인 가치는 논쟁 중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진화론이 맞는지 창조론이 맞는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면, 둘 다 가르치고 아직도 논쟁 중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이 두려운 것은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교육적 담론은 그 시점이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있다. 이 시대의 교육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가치들이 저 수많은 학생의 개인적 미래와 하나밖에 없는 이 세상의 집단적 미래를 규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한다. 그래서 교육적 논쟁을 대할 때에는 빨리 결정지으려는 조급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어서 결정하라고 몰아붙여서도 곤란하다. 더디더라도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에서 다루는 가치는 합의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합의되지 않은 것을 굳이 가르치려면 한쪽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미래기업에 종사하는 교육자의 기본적인 양심이고, 배우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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