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2] 가족을 버리는 사람들

 

 

 

▲ 아픈 남편이 걱정돼서 방앞에서 지켜보는 광팔이. 사진=김윤주 기자

 

☞우리 집엔 9살 먹은 강아지 '광팔이'가 산다. 하얀 털에 까만 눈과 까만 코. 누구나 인정하는 순박함과 사랑스러움을 지녔다. 사람을 좋아해 택배 아저씨까지 반긴다. 도둑도 반길지 모를 사교성이다. 어딜 가든, 화장실에 볼일 보는 영특함도 갖췄다. 9년간,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되레 위로받았다. 아플 때, 슬플 때도 나랑 함께해줬다. 얼마 전, 남편이 장염으로 고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혹 자신이 방해될까 방에 들어오진 않았다. 대신 방 앞에서 한동안 지켜볼 뿐이었다<사진>. 때론 사람보다 낫다. 함께한 세월만큼, 남은 세월이 서글프다. 적지 않은 나이만큼 걱정이 앞선다. '가족'이기에 그렇다.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한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이해한다. 내가 증오하는 건 따로 있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과 버리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는 정말 참을 수 없다. 동물도 살아있다. 감정도 있다. 굳이 싫다면, 내버려 두면 된다. 싫다고 해서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이 세상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니다.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키워서도 안 된다. 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다. 질렸다고 버려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지난해 유기동물은 10만 마리다. 그중 30%는 휴가철에 버려졌다. 계곡, 바다, 섬, 휴게소 등등에 유기됐다. 일부러 '먼 곳'을 찾아가서 버린다고 한다. '가까운데 버리면 찾아올까봐'란 잔인한 이유다. 놀러 가는데 맡길 곳이 없다고 버리기도 한다.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유기견들은 특징이 있다. 차가 지나가면 유심히 쳐다본다고 한다. 차를 쫓아가기도 한다. 주인이 차를 태우고 가다 버리기에 하는 행동이다.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개들도 많다.

☞버린 주인은 뻔뻔하다. 유기견에 내장칩이 있어 전화해도 '모르쇠'다. "전화번호가 바뀌었어요"하는 경우가 많단다. 개들은 애타게 주인을 찾는데, 그들은 잊고 잘 산다. 보통 유기 동물들은 나이가 많다. 어릴 땐 작고, 예쁘니까 사랑받는다. 그러다 늙으면 버려진다. 버리는 사람에겐 책임감도, 죄책감도 없다. 유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반려동물을 쉽게 사고파는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 쉽게 얻어 쉽게 생각한다. 가족은 나이 들어도 가족이다. "가족이 늙었다고 버릴 건가?" 언젠간 당신에게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작은 생명이 당신을 기억한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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