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본격 재미 탐구'

우리는 '재미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신간 '본격 재미 탐구'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뭐니뭐니해도 '재미'다.

재미는 언제 어디서든 칭송받아야 할 절대선이다. 재미는 남녀노소, 민족, 종교, 정치적 이념 등 그 어떤 간극도 쉽게 뛰어넘는 만능열쇠이자 보편적 가치다.

국경을 초월해 성장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이를 대변한다. 권력을 좇는 정치인에게 유머감각은 필수 덕목이고, 재능 있는 가수나 배우도 재미가 없으면 소용없다.

수백 년 뒤 후세 사가들이 현세에 이름을 붙인다면 '재미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북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마이클 폴리는 최근 저서 '본격 재미 탐구'(원제 Isn't This Fun?·지식의날개 펴냄)를 통해 현대인의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은 재미라는 현상을 다각도로 탐색한다.

오늘날 재미는 세계적인 보편종교나 다름없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재미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건 마치 신이 지배하던 중세에 무신론자라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재미에 회의적이거나 감수성이 약한 사람은 사회관계망에서 추방당하는 호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현상을 경박하고 자아도취적이며 방종한 문화적 타락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이는 근대 계몽주의적 관점이지만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부분적으로라도 이런 시각을 공유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도 원래 지적인 허세덩어리여서 재미의 저속하고 경박한 속성에 몸서리를 친다고 털어놓는다. 또한 목표를 중시하는 금욕주의자여서 재미에 깃든 쾌락 위주의 무책임한 속성을 싫어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재미에 대해 균형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고자 한다.

재미는 개인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고 집단적이며,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고 분석한다. 재미가 고대나 중세, 혹은 원시시대 종교적 제의를 통해서 얻고 맛볼 수 있던 연대감이나 일체감, 영적인 안정감을 현대인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재미를 단순한 쾌락주의가 아니라 이성이 삶을 주도한다는 근대적 신념의 실패에 대한 대응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합목적적이고 도구적인 이성에 이끌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느라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됐다는 모호하지만 강렬한 느낌이,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에 몰두하게 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현대적 의미의 재미(fun)는 18세기 근대사회가 형성되면서 출현했다. 언어적으론 속임수나 거짓말을 의미하는 옛 영어 단어 'Fon'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재미는 자본주의적 욕구가 '소유'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바뀐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를테면 값비싼 스포츠카를 사는 것보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데 돈을 쓸 때 더 가치 있는 소비행위로 인정받는다.

재미는 과시적인 속성이 강하다. 우리는 모두 남들에게 사심 없이 재미를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재미 부자'로 보이고 싶어한다.

"재미는 종교처럼 우월성의 표시기 때문에 재미있어 보이는 겉모습이 실제로 재미를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모두가 재미를 갈망하고 재미를 경험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남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가운데 지위가 낮거나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재미를 추구하는 속물이 되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다."

김잔디 옮김. 384면.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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