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와 4차례 인터뷰, 책으로 펴내

무라카미 하루키 "내 소설 여성주의 부족? 미안합니다"

젊은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와 4차례 인터뷰, 책으로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내가 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요.", "저는 '무라카미 인더스트리즈'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거위일 뿐입니다.", "소설을 쓰지 않게 되면 아오야마 근처에 재즈클럽을 열고 싶어요.", "적어주세요. 내 이름을 단 상은 절대로 만들지 말 것!"

신작이 나왔다 하면 일본 열도를 들썩이게 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가 쏟아낸 말들이다. 그가 젊은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와 나눈 네 차례 장시간 인터뷰 내용을 담은 책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출판사 문학동네)에서는 그의 이런 솔직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평소 공식 석상이나 미디어 앞에 잘 등장하지 않는 그가 편안하게 내뱉은 이런 말들은 그의 팬들을 솔깃하게 할 만하다.

가와카미는 파격적인 문체로 생생한 여성성을 그려낸 소설 '젖과 알'로 2008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일본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작가다. 가수 출신으로 배우와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여성이다. 그는 2015년 한 문예지 청탁을 받아 하루키를 처음 인터뷰하게 된다. 역시 이 인터뷰 내용을 마음에 들어한 하루키가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듬해 가을 '기사단장 죽이기'를 탈고한 뒤 이 작품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인터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수많은 독자를 대변한다'는 책임감 비슷한 것 때문에 처음에 긴장했다는 가와카미는 "십대 중반부터 꾸준히 읽어온 작품의 작가에게 지금의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물어보면 된다. 무라카미 씨의 우물을 위에서 엿보며 이리저리 상상하는 대신 직접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마음먹고 편하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와카미는 작품 속에 페미니즘을 투영한 젊은 작가로서 하루키 작품에서 여성주의 시각으로 비판받는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여성 캐릭터가 성적인 역할만을 완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하루키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저는 어떤 등장인물에 대해서든 그리 깊이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 인물이 어떤 세계에 관계되었는가, 요컨대 그 인터페이스(접면)가 주된 문제지, 존재 자체의 의미나 무게, 방향성 등은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묘사하지 않으려 주의하는 편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자아에 대해서는 되도록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257쪽)

"그래도 저는 그런 것을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포지티브도 아니고 네거티브도 아니고, 그런 예견을 제쳐두고서,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갈 따름입니다. 저는 사상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고, 사회활동가도 아니고, 일개 소설가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그것이 어떤 '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이상하다, 생각이 모자라다는 말에는 '미안합니다'라고 순순히 사과하는 수밖에 없죠. 사과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고요(웃음)." (261쪽)

인터뷰 말미에 가와카미가 '만약 노벨상을 받고 싶다면 정치적인 부분을 명확히 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하자 하루키는 역시 담담하게 "제 생각에, 제가 쓰는 글은 꽤 정치적이라고 봅니다만"이라고 답한 뒤 이렇게 덧붙인다.

"제가 무슨 말을 한들 그 덕에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점점 나빠지는 느낌이고. 그러면 남은 건 소설 쓰기뿐이다 싶죠. 만약 제가 구체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한다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곧잘 뭐라고 반박할 겁니다. 트위터 같은 데서요. 그런 차원의 발전성 없고 지루한 논쟁에 말려들 바에야 혼자서 조용히 내 소설을, 이야기를 정면에서 부딪쳐가고 싶은 거죠. 트위터나 페이스북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에 "소설가는 그런 데 말려들 시간이 없다"는 거냐고 묻자 "순전히 소모니까요"라고 답한다.

또 "설령 종이가 없어져도 인간은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라며 이렇게 마무리한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제 이야기를 소리 높여 이어가고 싶습니다. 괜찮으면 제 동굴에 들르세요. 모닥불도 훈훈하게 피워뒀고, 구운 들쥐 고기도 있어요(웃음)."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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