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작가 특유의 촘촘한 구성…연기에도 빈틈없어

'라이프', 또 한 번 머리 싸매고 보는 즐거움

'비밀의 숲' 작가 특유의 촘촘한 구성…연기에도 빈틈없어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반쯤 누운 자세로 오징어를 뜯으며 보다가는 어느 순간 이야기로부터 '왕따'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를 볼 때만큼은 곧은 자세로 앉아 오감을 집중하는 편이 좋겠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tvN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가 또 한 번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어낸 작품, JTBC '라이프'를 들고 나타났다. 이번에는 병원이 배경인데, 인물 간 두뇌 싸움이나 사건 스케일이 검찰을 배경으로 삼은 '비밀의 숲' 못지않다.


◇ 의료계 부조리 전격 해부…추리요소와 재치 더한 스토리

'라이프'는 의학 드라마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연애담을 그리지도, 의사들 간 승진 등 권력 쟁취를 위한 싸움을 묘사하지도 않는다.

'라이프' 무대인 상국대병원은 병원장 이보훈(천호진 분)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부원장 김태상(문성근)의 계략 아래 '전문 경영인' 구승효(조승우)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실적 제일주의' 구승효는 남다른 지식 습득력과 치밀한 준비능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여러 가지 의료용 가위를 보고 "뭐야, 이발소 가위?"라고 물을 만큼 의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 그는 상국대병원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낙산의료원 파견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면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과로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곳들을 찍어냈다.

여기까지만 봐도 알 수 있듯 단순히 드라마 속 '픽션'으로 보기가 어렵다. 의료계에서 이윤만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또 환자 정보를 생명보험사에 넘겨버리고, 시민 의료권은 안중에도 없이 병원을 전형적인 사업 구조조정 방식으로 갈아엎으려 하는 구승효가 있는가 하면 이보훈이나 주경문(유재명)처럼 의료의 본래 이념에 충실한 사람들도 있다. 이것 역시 의료계 현실이다.


이렇듯 이수연 작가는 치밀한 취재를 통해 지금껏 국내 의학 드라마들이 짚어내지 못한 부분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비밀의 숲'처럼 주요 등장인물이 죽으면서 시작하고, 누가 범인인지를 추리해가는 재미를 더했다. 전작을 보면 시청자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간간이 보이는 코믹 요소는 한껏 수축한 근육을 잠시 이완할 수 있게 돕는다. 구승효가 예진우(이동욱)의 사진을 보고 "재수 없어"라고 하면, 강경아(염혜란)가 "너무 잘생겼다"고 호들갑을 떠는 장면 등에서.


◇ '5분 카리스마' 조승우, '진짜 응급의' 이동욱, 명품 조연

탄탄한 스토리를 화려하게 풀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이다.

특히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 검사로 열연한 조승우는 이번에 구승효로 변신해 또 다른 독보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특히 1회에서 거의 마지막에 5분 등장한 것만으로도 극 전체를 압도해버린 모습에서 그만의 카리스마를 실감할 수 있었다.

조승우는 제작발표회에서 구승효에 대해 "재수 없는, '극혐'(극히 혐오스러운) 캐릭터"라고 표현했다. 이에 비추면 구승효의 악행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된 하루를 보내고 수술실 바닥에서 잠든 주경문에게 천을 덮어주는 모습 등에서 갱생(?)의 여지를 엿볼 수 있었다. 조승우 역시 "완전 나쁜 캐릭터는 아니다"라고 한 것에 미뤄, 극 후반부 결국 예진우와 한편이 될 구승효를 조심스럽게 예측해보는 시선도 많다.

이동욱 역시 실제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처럼 예진우의 파리한 인상과 예민한 내면을 그대로 소화해내고 있다.

물론 핏기없는 얼굴을 보며 그의 전작 '도깨비' 속 저승사자가 연상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무기력한 듯하다가도 한 번씩 구승효와 대척점에 서는 모습에서 조승우의 것과는 또 다른 카리스마를 볼 수 있다.


이밖에 명품 조연들도 극을 꽉 채운다.

'진짜 의사' 주경문 역의 유재명과 의사들도 존경하는 의사 이보훈 역의 천호진, 자존심 강한 여의사 오세화 역의 문소리,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는 강경아 역의 염혜란, 그리고 '아직은' 제일 악역 같은 김태상 역의 문성근까지. 중견 배우들은 극의 완급을 자유자재로 조절한다.

1인 2역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예선우 역의 이규형과 이노을 역의 원진아 등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고 연기하는 젊은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 월화극 아니라 금토극이었다면…'비숲'과 비슷한 피로도

'라이프'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편성이다.

아마도 최근 '승승장구 중인' JTBC는 모든 요일의 블록에서 세를 확장해보겠다는 전략하에 대작으로 불리는 '라이프'를 월·화요일 밤 11시에 편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이프'처럼 머리 싸매고 봐야 하는 드라마를 주초 심야에 챙겨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다시보기' 하는 시청자가 늘 수밖에 없다. 물론 '라이프' 시청률은 1회 4.3%(닐슨코리아 유료가구)에서 2회 5.0%로 뛰어오르며 해당 시간대를 고려하면 선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밀의 숲'과 비슷한 스토리 구조 때문에 '비밀의 숲'을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충격'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 부분은 아직 초반이니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이밖에 극의 몰입을 돕는 음향 크기와 디자인이 너무 작위적이어서 '사운드로 감정을 끌어올리려 하는 것 같다'는 소소한 지적들도 있다. 한땀 한땀 뜯어봐야 하는 드라마의 숙명으로 보인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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