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친목회 등 소규모 모임의 경우 식사 값을 어느 한 사람이 전부 부담할 때가 많다. 밥값을 내는 사람을 가리켜 '유사'라 한다. 한자어로는 '有司'다. "이번 모임에 유사가 누구지?" 이번 모임에서 밥값을 낼 사람이 누구냐는 말이다. 사전적 정의로 '유사'는 '단체 또는 자생적 모임에서 사무를 맡아보는 직책'이다.

'유사'의 탄생 시기는 16세기 초로 보면 맞다. 이때는 성리학이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문중에서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가족모임이 조직됐다. 이른바 가족계(家族契)다. 가족계 구성원은 보통 30명 안팎이었다. 계원 명부를 '문안(門案)'이라 했다. 가족의 단합은 물론 조상의 유지를 받들고 선비를 육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각 문중의 선비들은 가족계를 통해 그 가치를 발할 수 있었다. 가족계는 계원 관리, 문안 작성, 연락, 경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를 '유사'라 했다. 유사는 이뿐만 아니라 계원들의 행동거지도 살폈다. 계원(契員)들이 농사를 게을리하거나, 부모나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거나, 공부를 부지런히 하지 않거나, 제사나 집안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계모임이 열리는 날 모두에게 알린 뒤 적당한 벌을 내렸다. 당시 계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유사에게 잘 못 얻어걸리면 큰코 다쳤다.

16세기 말 가족계가 보편화되면서 대동계(大同), 혼상계(婚喪), 동갑계(同甲), 수리계(水利) 등 다양한 모임이 생겨나자 유사의 비중도 커졌다. 할 일도 많아지고 권력도 더 강화됐다. 조선시대의 이 '유사'가 오늘날 계모임 때 흔히 말하는 '유사'의 원조다. 모임이 대부분 식사와 함께 이뤄진다. 이때 계원들은 밥값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적지 않은 밥값을 혼자 부담하기도 그렇고, 갹출하기도 그렇고, 어렵게 모아둔 회비를 사용하기도 그렇고…번거롭지 않고 공평하게 부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순번제로 부담하는 방법이다. 이번 모임은 '갑'이, 다음은 '을'이, 그 다음은 '병'이 밥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사'는 모임의 운영, 관리 등을 총괄하지만 요즘 '유사'는 밥값 내는 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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