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샤갈의 그림에서 사랑이 넘친다. 색채가 화려하고 몽환적이다. 화가는 현실이 아닌 이상 세계를 그린 듯 싶다. 하지만, 그는 이상적 꿈이 아닌 자신의 추억을 그린 것이란다. 내가 처음 본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 작품은 뾰족한 도시 지붕 위 하늘을 나는 두 남녀, ‘도시 위에서’란 그림이다. 독특한 그림 속 연인의 사랑의 깊이는 어느 만큼일까? 라고 의문을 품은 적 있다.

그림 ‘산책’도 같은 분위기다. 녹색 지붕 위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붉은 드레스의 여성을 건장한 남성이 왼손으로 잡고 있는 형상이다. 청록색과 빨강, 보색을 사용해 그림 속 연인이 강렬하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를 '색채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책 속에서만 보던 샤갈의 그림이다.

최근 샤갈의 사랑과 생애가 담긴 '샤갈 러브 앤 라이프'전(展)이 열려 서울로 향한다. 미술관 벽면에 쓰인 '예술에도, 삶에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란 문장이 가슴에 와닿는다. 샤갈이 평생 사랑하고 그리워한 여성 벨라가 그림 속에 있다. 그는 유년 시절 친구인 벨라 로젠 펠트와 결혼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샤갈의 그림에 많은 영감을 줬고 연인 벨라는 샤갈의 그림 ‘생일’, ‘술잔을 들고 있는 이중 초상’, ‘에펠탑의 신랑신부’ 등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벨라가 죽은 뒤 샤갈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벨라는 샤갈에게 뮤즈, 혹은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샤갈은 벨라를 보내고 절망에 빠져 9개월간 붓을 들지 못했단다. 그에게 벨라는 작품 세계의 여신이자 인생의 동반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어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으랴. 정녕코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는 걸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나는 가끔 무뚝뚝한 남편에게 시(詩)적 대화를 원한다. 샤갈전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니 그것도 아니다. 내가 중년 작가로 서 있는 건 옆지기 덕분이다. 아무 조건 없이 바라 봐주고 응원해주지 않던가.

그래, 사랑으로 낳은 예술이 어디 그림뿐이랴.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도 사랑 덕분에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미국인 간호사에게 구애하다 거절당한 경험은 ‘무기여 잘 있거라’의 소재가 되었고, 중년에 종군기자 마사 겔혼과 스페인 내전을 취재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란 명작을 남긴다. “사랑에 빠졌을 때 가장 좋은 글이 나온다”고 말한 그는 아내가 바뀔 때마다 새 글을 쓴다. 추리의 여왕인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의 발굴 작업을 도우며 지리적 상상력을 키워 추리소설 작가로 전성기를 누린다. 오죽하면, '남편으로는 고고학자가 최고다. 아내가 오래될수록 더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겠는가.

예술가는 심오한 사랑에 영감을 얻어 글도 짓고 그림도 그린다. 사랑 때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기도 한다. 대부분 죽을 것 같은 그리움을 삭혀 예술로 승화한다. 샤갈도 지독한 사랑 덕분에 다수의 명작을 낳은 것이다. 샤갈에게 벨라는 사랑의 신화를 쓰게 한 장본인이다. 그리 보면, 사랑은 일방통행은 아니다. 관계 속에서 명작도 예술도 탄생한다. 사랑의 신화, 샤갈 전(展)에서 확인한다. 사랑은 명작을 낳는다. 더불어 훌륭한 예술가도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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