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폭증 속 고육지책→우수 콘텐츠 진원지

'스튜디오드래곤'으로 보는 한국드라마 제작의 미래

제작비 폭증 속 고육지책→우수 콘텐츠 진원지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최근 수백억 원대 제작비를 들였다는 드라마 소식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접한다.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시청자 눈과 주당 최대 52시간 근로정책(방송 제작은 한시적으로 68시간)에 발맞추려면 '돈'을 쓰지 않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방송사에서는 편성 책임만 지고, 외부에 제작 스튜디오를 별도로 설립해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비 부담, 유통까지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이렇게 만든 스튜디오 모델로는 CJ ENM 계열사인 '스튜디오드래곤', KBS 미디어, KBS N, KBS가 공동 출자한 '몬스터유니온'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스튜디오드래곤은 이른 시일 내 자리를 잡고 성과를 내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시작은 고육지책에 가까웠지만, 현재는 우수 콘텐츠의 진원지가 된 모양새이다.

2016년 5월 CJ ENM(당시 CJ E&M)의 드라마 사업본부가 물적 분할해 설립된 스튜디오드래곤은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청률 45%의 기록을 세운 KBS 2TV '황금빛 내 인생' 등 주말극부터 케이블 역사를 새로 쓴 tvN '도깨비', 우수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시그널', '비밀의 숲', 최근 대작 '미스터 션샤인'까지 다양한 작품을 내놨다.


기존 제작사들은 지상파에 편성돼야만 수익을 낼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 방송사의 제작비 지급률이 40~60% 수준인 상황에서 제작사들은 손익보전을 위해 PPL(간접광고),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등 부가사업으로 부족한 제작비를 조달해야 했다.

그러나 스튜디오드래곤의 경우 제작비의 100%를 지급하고 콘텐츠 기획, 개발과 자금운용, 유통 등을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제작사들이 순수하게 창작에 전념할 수 있다. 방송 이후 국내외 방영권 판매, VOD 유통도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스튜디오드래곤이 전담한다.

즉, 방송사(플랫폼)와 제작사 사이에 있는 스튜디오가 전체적인 사업을 주도하는 허브(Hub) 역할을 하고 스튜디오와 네트워크를 형성한 개별 제작사는 핵심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창작하는 구조가 정착한 것이다.

덕분에 스튜디오가 여러 채널에 작품을 공급하며 제작 물량을 늘릴수록 규모의 경제와 인적 네트워크가 강화돼 경쟁력이 상승한다. 우수 창작자들과 제작사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초기 단계인 만큼 모든 스튜디오가 스튜디오드래곤처럼 안정궤도에 오르진 못했다.

스튜디오드래곤의 성공 요인을 보면 플랫폼 다양화로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제작비 상승세를 뛰어넘는 매출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환경과, 우수한 크리에이터와 국내외 판로를 확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최근 내부 작가와 PD 등 인력 풀이 상당히 쪼그라든 지상파 등도 조금씩 스튜디오 설립에 대한 뜻을 내비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스튜디오 모델이 자리를 잡게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23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기업의 직접 제작 확대 등 국내 드라마 산업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단순 제작 하청기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국내 자본 제작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감독·배우·스태프 등 창작자를 보호하고 육성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며 "규모의 경쟁 측면에서 스튜디오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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