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심억수 충북시인협회장


불볕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이상 기온은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소나기가 내린다.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는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나의 일상도 준비된 우산 없이 맞은 소나기처럼 온몸이 삶의 빗줄기에 흠뻑 젖어버렸다.

청주의 젖줄 무심천은 무섭게 내리는 비를 모두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무심천 그득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몸짓 같다. 흐르는 게 어디 무심천뿐이겠는가. 시간의 흔적들도 소리 없이 깊어간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몸짓으로 흐르는 무심천을 바라보며 잠시 나를 돌아본다.

기암괴석의 틈새로 생명을 내린 풀과 나무들이 무성했던 목도 강가에서 자란 나는 물고기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 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도 키웠다. 나는 보는 이가 없어도 한밤에 꽃피우는 달맞이꽃을 좋아했다. 달맞이꽃처럼 나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내 모습은 여름 태양처럼 뜨거웠던 열정도 식어 버렸다. 색깔마저 흐려져 형체도 알 수 없는 세월에 물들었다. 내 마음의 욕망이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흐르는 무심천처럼 소용돌이친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존재의 미련과 아집에 몸부림친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집착과 욕심에 사로잡혀 혼자만의 생각에 괴로워한다.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소외되는 것 같아 미움이 된다. 미움들을 털어 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편협한 마음 가득 미움만 쌓여 간다.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처럼 마음에 상처만 깊어졌다.

비가 그쳤다. 7월의 푸른 바람이 코끝에 매달린다. 비 갠 우암산자락에 바람은 능숙한 필치로 비단 한 조각 그려 놓는다. 올해의 시간도 벌써 반년을 보냈다. 또 다른 내일을 향하여 시간은 빠르게 가고 있다. 그날이 그날 같았던 일상의 시간이 내 마음을 짙푸르게 덧칠 하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생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많은 계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때로는 남을 아프게도 했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많이 아파하기도 했다. 이제 생각하니 나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가지려 한 집착과 욕심 탓이었다. 매사에 경계하며 아집 속에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다.

돌아보면 모두를 손에 쥐려는 욕심 때문에 좋은 인연도 악연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쯤 내가 아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욕심은 끝이 없어 다른 사람보다는 내 안위를 위함이 몸에 밴 것 같다. 내가 한 행동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받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한 못마땅한 부분도 이제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겠지 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

무심천이 흘러가듯 모든 것은 흘러간다. 머물고 싶었던 순간도 모두가 흘러갔다. 더 이상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말자. 집착과 욕심을 어느 한쪽이 놓지 않으면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 마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흘러간다는 것은 내 것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도 알았다. 급류처럼 지나온 인생 가끔은 무심천을 바라보며 마음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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