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묵 대전시 개발위원회장

다시 피서의 계절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 어느 해보다도 일찍, 그것도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나타났다. 낮에는 불볕더위요, 밤에는 열대야로 연일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들판에서 중노동을 한 사람처럼 전신이 땀에 절고, 축 늘어지게 만드는 요즈음의 날씨. 문득 옛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이리 덥지는 않았다. 땡볕에 나가 일하던 사람이 일사병으로 세상을 버렸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어지간하면 그늘로 숨어들어 더위를 피하면 되었다. 그리고 여유로운 시간은 대청마루에 누웠다. 그러면 언제나처럼 골바람이 찾아왔고, 매미의 시원한 노랫소리는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또 저녁나절이면 어른 애 할 것 없이 냇가에 나가 훌러덩 벗어 제키고 멱을 감으면 더위는 저만큼 달아났다. 더위가 한결 심해진 탓일까. 내게 인내력이 무너진 탓일까. 요즈음 더위는 그토록 감미로운 골바람의 속삭임으로도 안 되고, 매미소리는 듣기조차 어렵다. 동구 밖 냇가는 몸을 담글 물이 없다. 4대강이니 뭐니 해서 개울물은 돌을 깔아 머무르지 못하도록 해 놓았고, 강물은 보를 막아 녹조로 뒤덮였으니 우리의 알몸을 감춰줄 물이 없다. 그러니 에어컨을 팡팡 틀고 있거나, 피서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시원한 곳으로 옮겨 더위를 피하겠다는 계산이 '피서'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 곳은 나무 밑이나 대청마루가 제격이었다. 그러니까 피서는 순간의 피함이었고, 단순한 삶의 한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의 피서는 꼭 수행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름이면 당연히 찾아오는 하나의 여름살이가 되었다. 계획을 세워 경비도 마련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 피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 우리가 여유로운 처지인가. 물론 외국으로 나가 견문도 넓히고 새로운 문화의 접촉으로 글로벌한 식견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또 열심히 일 했으니, 자신의 삶에 쉼표 하나 찍겠다는 데에 무슨 시비를 할 일인가. 다만 무리가 아닌 삶이길 주문하고 싶은 거다. 한 번 기분 내고 한 해가 다 저물도록 허덕인다면 뭔가 엇박자가 된 듯하다. 국내의 경기도 어렵고, 이웃에는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도 많다. 오직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는 피서여행은 자제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기왕 떠나는 여행이라면 좀 깨어 있는 눈으로 배우고 얻어오는 여행길이길 주문한다. 큰 경비를 소비하며 가진 기회라면 얻은 게 있어야 훗날 활력소로 작용하는 법이다. 피서는 돌아오면 타 버린 피부의 따가움으로 오랜 기간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 따가움이 덜하려면 반드시 얻은 것이 있어야 한다. 금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불볕더위에 열대야라 하는데, 괜한 소리 하여 더 덥게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소리 그만하고 냉장고의 수박이나 꺼내 화채나 해 먹어야겠다. 여러 형제 밀대방석에 둘러앉아 양푼에 든 화채를 서로 먹으라며 밀고 당기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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