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수만 명을 헤아린다는 한국 문단에서 적어도 5년에 한 권 씩 시집을 출간한다고 해도 그 물량은 어마어미하다. 극소수 지명도 있는 시인이나 이른바 메이저급 출판사가 펴내는 시리즈 시집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자비로 출판되고, 기증 형식으로 소비된다. 적게는 200만원 남짓에서 수백 만 원이 드는 출판비를 필자 부담으로 만든 시집은 ISBN을 붙이고 정가를 명기하였음에도 수요공급 구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독특한 소비 사이클을 보인다.
대체로 그만그만한 디자인과 편집, 천편일률적인 형태에 몇 년마다 시집을 펴내는만큼 오래 축적된 작품에서 양질의 시편을 뽑아내기 어렵다보니 완성도가 미흡한 작품은 물론 축시나 손주에게 주는 덕담까지 모두 모아 수록한 결과 읽어볼 흥미를 이끌어내기도 어렵다.
몇 년마다 비슷비슷한 시집을 만드느니 오래 뜸들여, 다소의 경제적 지출을 감안하더라도 누구나 탐낼만한, 소장가치가 있는 문화상품으로 시집을 한권쯤 펴내볼 만하다. 고 이가림 시인(1943∼2015)이 생전에 출판한 시잡<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만하다. 포(布) 케이스에 담겨 한지에 활판인쇄도 독특하고 제작한 사람들의 이름이 판권에 명기되어 있다. 손으로 한 권 한 권 꿰매 만든 공들인 시집은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집의 물결 속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렇게 정성들인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독자 역시 정성들여 읽게 되고 서가에 소중하게 보관하게 되지 않을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