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식 충북본사 취재부장

한범덕 청주시장은 말을 참 잘한다. 인문학에서 전문과학기술까지 아우르는 그의 폭 넓은 지식에 대화를 하다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한다. 한 시장의 북콘서트에 취재차 방문했다가 그의 강의에 빠져들어 다음 약속에 늦은 기억도 있다.

그런데 폭 넓은 지식과 행정을 잘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 민선 5기 시절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행착오는 민선 5기 청주시장 취임과 동시에 시작됐다. 전임 시장 시절 경쟁에서 밀려 한직에 있던 과장들이 한 시장의 취임과 동시에 요직에 발탁됐다. 그들은 지방선거 기간 노골적으로 한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더구나 한 시장과는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했다. 인사파트에서 이들의 요직 임명을 만류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임명됐고, 국장까지 승진했다. 내부에서의 평도 좋지 않았던 과장들이 요직에 임명되면서 한 시장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실망으로 바뀌었다. 온갖 악소문이 발생했고 여러 설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 시장의 지식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때로 고집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한 시장은 민선 5기 시절 유독 여론 설득에 실패한 사업이 많았다. 추진과정에서 한 시장과 대화를 한 인사들은 “시장의 말이 맞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으로 승복이 되지 않았다. 한 시장 입장에서는 결국 설득에 실패한 것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한 시장의 민선 5기 최대 실적은 청주·청원 통합이다.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종윤 전 청원군수와 함께 통합 3공신으로 꼽힌다.

이 지사의 지원아래 한 시장은 이 군수와 파트너로서 통합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 시장이 가장 잘한 점은 침묵을 지켰다는 부분이다. 통합 추진 과정에서 때로 청원군은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내부의 반대를 무마시키기 위한 뜻이 담겼지만 청주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도 있었다. 그래도 한 시장은 본인의 의사를 내비치기보다는 청원군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한 시장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청주시 내부 불만도 없지 않았지만 한 시장은 끝까지 일관된 자세를 유지했다. 결국 3전 4기 끝에 청주·청원 통합은 성공했다.

이후 한 시장은 2번의 실패를 겪었다. 민선 6기 통합 청주시장 선거와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선거마다 출마한다’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4년간의 야인(野人) 시절이 한 시장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취임 후 2주가 지났다. 분명 예정과 다른 것 같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우선 시민들과 하위직 직원들에게 살갑게 다가가고 있다. 반발을 일으켰던 일방적 대화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특히 말하기보다는 듣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 시장은 9일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직원정례조회에서 “삶의 지혜는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글을 읽었는데 저도 말하고 후회하는 적이 있어 앞으로 이야기를 많이 듣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야인 시절, 실패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깨달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언제까지 유지될 것이냐다. 뼈아픈 야인 시절의 기억이, 민선 5기 실패한 정책과 성공한 정책에 대한 교훈이 한 시장의 변화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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