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어머니의 나라'…中 모쒀족에서 찾은 정상가족 대안

결혼 없이 연애만 하는 유토피아가 존재할까

신간 '어머니의 나라'…中 모쒀족에서 찾은 정상가족 대안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가족은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된 고유한 존재 방식이지만, 오늘날 부부와 자녀를 기초로 한 전통적 가족 개념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날로 높아지는 이혼율은 결혼 제도의 당위성과 효용성을 의심케 한다. 성평등 요구가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시대와 불화하는 가부장제는 가족과 사회의 뿌리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신간 '어머니의 나라'(흐름출판 펴냄)는 중국 소수민족 모쒀(摩梭)족을 통해 해체 위기에 놓인 가족 제도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폭넓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과 쓰촨(四川)성 경계에 있는 말린 박 모양의 호수 루구(瀘沽)호. 넓이 48.5㎢의 크고 깊은 호수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그 루구호 주변에서 2천 년 전부터 삶의 터전을 일군 모쒀족은 이제는 지구 상에 얼마 남지 않은 모계사회를 유지하며 '가모장제' 전통을 이어왔다.

모계제는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을 정하는 방식이고, 가모장제는 가족 내에서 여성을 가장으로 삼는 제도를 가리킨다.

모쒀족의 가족은 가장인 외할머니 아래 어머니와 이모, 외삼촌, 이종사촌 등 모계 친족으로만 구성되며, 아버지를 비롯한 부계는 없다.

모쒀족 여성은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집에 자기만의 방을 갖고 그 방에서 마음대로 사랑할 자유를 누린다. 모쒀족 말로 연인을 '아샤오'라고 하는데, 남성 아샤오는 여성과 밤을 보낸 뒤 아침이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 같은 모쒀족의 애정 관계를 주혼(走婚·Walking Marriages)이라고 하는데 숨은 뜻이 재밌다. 남녀 모두 수에 상관없이 연인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으며, 연인끼리 별도의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계 혈족의 일원으로만 귀속된다.

모쒀족의 이런 생활방식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무'(格姆)라는 여신을 섬기는 모쒀족의 종교는 티베트 불교에 토속신앙이 결합한 형태인데, 여성이 주축이 된 사회상을 반영한 듯 여성숭배가 핵심이다.

여자들은 연인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남자들은 남편과 아버지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혼이 없는 모쒀족 사회는 어쩌면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유토피아같이 들린다.

저자는 추 와이홍이란 중국계 싱가포르인 변호사다. 세계적인 로펌에서 일하다 2006년 조기 퇴직한 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중국 전역을 여행하던 중 모쒀족 마을에 집을 짓고 정착해 6년 이상 함께 생활했다.

부유한 사업가지만 극도로 가부장적이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저자는 가부장제에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 아버지는 사업차 들르는 항구도시마다 애인을 둘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다. 저자는 고문 변호사로 성공했으나 남성 중심적인 직장 문화에 염증을 느끼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기질을 더욱 또렷이 확인했다고 한다.

현실의 부조리를 느끼면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던 저자는 모쒀족에게 새로운 영감을 얻고 깊이 매료된다.

저자는 모쒀족을 영적인 안식처와 같다고 말한다.

"모쒀족과 함께 지내며 나는 인류의 절반을 억압하고도 이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를 채택한 대다수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얻었다. 모계제와 가모장제를 채택한 모쒀 사회가 가진 원칙은 우리 모두가 꿈꾸어볼 만한, 더 평등하고 더 나은 멋진 신세계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쒀족 이야기는 페미니즘 색채가 짙다.

번역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일어난 국내 페미니즘 열풍을 주도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 작가가 맡았다.

하지만 꼭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책에는 흥미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우선 우리 뇌리에 깊이 박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깨뜨릴 통찰을 준다. 현실에서 가족 제도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전통적 가족상에 사로잡혀 대안은 상상하지 못하는 이들을 일깨운다.

모든 인류가 원래 모계제 공동체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이유로 중간에 부계제로 바뀐 다른 민족들과 달리 모쒀족은 고대 가족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주변 부계사회에 둘러싸인 채 굴복하지 않고 어떻게 모계제 전통을 이어왔는지는 수수께끼다.

모계제라는 사회 기초에서 파생된 다른 특징도 있다. 모쒀족은 부계사회에 비해 여성의 자립심과 여권이 강한 것은 물론 남녀노소 간의 평등성이 두드러진다.

모쒀족 여성들은 연인을 선택할 때 재력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책임감도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의존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외모를 중시하며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선호한다.

이에 걸맞게 모쒀족 남성들은 하나같이 준수한 외모와 매너를 자랑한다. 저자는 모쒀족 남성들이 대부분 180㎝ 정도의 훤칠한 키에 잘생겼을 뿐 아니라 여성들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평가하며 공작에 비유하기도 한다. 게다가 자기애가 강해 스스로 뽐내기를 좋아하고 몸치장이나 노래에 능숙하며 애정표현도 뜸 들이는 법 없이 직설적이라고 묘사한다.

책 곳곳에는 이 밖에도 일일이 다 옮기기 어려울 만큼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읽다 보면 가족 구성 방식에 따라서 사회 성격과 구성원들의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철칙인 양 믿고 살아가는 지금의 삶의 방식이 얼마든지 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12쪽. 1만3천8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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