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5 미륵사지석탑]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5 미륵사지석탑]
7세기 백제 무왕 때 조성, 최근 문화재청 복원 성공, 미륵사 창건 염원 이뤄져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200년간 절에 목탑만을 세우다가 백제 무왕 때에 와서 미륵사를 창건하고 맨 처음의 이 석탑을 조성하였다. 목조의 형식을 응용해서 돌로 바꾼 대역사인데 완전히 새로운 기법이었다. 인근의 산에서 바위(浮石)를 떼어다가 융통성 있게 잘라서 썼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는 삼국 중에서도 그 문화가 가장 융성한 나라였다. 서쪽으로는 바다건너 당나라와 가깝고 내륙으로는 김제·옥구에 큰 평야가 있었다. 그 중심 금마(金馬) 땅에다 대 가람을 짓고 불교역사상 없는 세 탑을 세웠으니 동탑(東塔)과 서탑(西塔)은 돌로 하고 그 가운데에는 더 큰 목탑(木塔)을 세운 것이었다. 지금 반쯤 허물어진 채로 서 있는 돌탑은 그 중 서쪽 탑이다. 미륵사에는 9층탑들이 세 개가 서 있었을 것인데 당시 현장을 상상해보건데 정말 장관이였을 것이다. 목탑은 또 어찌나 대단하였던지 나중에 신라 선덕여왕이 그 기술을 전수 받아 황룡사에 9층목탑을 만들었다하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와서 허물어지고 있는 서탑을 시멘콘크리트로 보완장치를 했었는데 최근 들어 우리 문화재청이 새롭게 해체 보수 복원해서 그 공사가 막 끝났다. 시멘트로 해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일부는 새 석재를 투입해서 원형을 살렸다. 기단부터 2층까지는 원형대로 회복시켰다고 한다. 이번 해체과정에서 귀중한 미륵사 건립발원문이 나왔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왕후(佐平 沙定積德의 딸)가 재물을 시주하여 639년 가람을 창건하고 탑을 조성하였다.
“원 하옵건데 위로는 정법(正法)을 크게 하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는데 도와주시고 세세에 모든 중생들이 영원토록 다 함께 복리를 받고 다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실로 천오백 년 만에 무왕의 미륵사창건 그 염원의 기록이 햇빛을 본 것이다. 그 간절한 뜻이 미륵사 대가람을 낳았다. 그런데 창건 후 불과 삼십년도 못 되어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나당(羅唐)연합군의 일격에 풍지박산이 된 것이다. 그 한은 얼마나 깊었겠는가. 절인들 온전했겠는가. 언젠가 이 세 탑만이라도 그 옛날 모습대로 다시 살아올 날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그간의 애절한 사정이 안타까워서하는 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