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현장서 계속 근무하며 사건 떠올려…'건강지킴이' 보호조치 필요

▲ [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 [제작 최자윤] 일러스트
[건강이 최고] 의료인 정신건강 위험수준…환자 폭력도 한몫

폭력 현장서 계속 근무하며 사건 떠올려…'건강지킴이' 보호조치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이달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의사와 간호사, 병원 내 사무직 등의 보건업종은 이번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인력이 보건업종 종사자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병원 내 청소인력이나 보안요원 등의 경우 병원에 소속돼 있지만, 업무 성격으로 볼 때 보건업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간호사들은 주 52시간을 넘어서는 초과 근무라도 제대로 인정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헬스케어산업 종사자들의 정신질환 유병률이 다른 산업체 근로자보다 높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인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Annal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의료계 종사자들의 수면장애 유병률은 다른 산업체 근로자에 견줘 2.2배나 높았다. 기타 정신질환 유병률도 같은 비교 조건에서 1.44배에 달했다.

이번 분석은 2014년도 국민건강보험 청구 데이터(1천386만9천757명)를 이용했다. 연구팀은 헬스케어산업 종사자(75만2천181명)와 나이, 성별, 수입 등의 조건을 맞춘 대조군 근로자(300만8천724명)로 나눠 주요 정신질환 유병률을 비교했다.

이 결과 헬스케어산업 종사자들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기분장애 1.93%, 불안장애 2.18%, 수면장애 3.47%, 기타 정신질환 7.58%로 분석됐다. 반면 대조군의 유병률은 기분장애 1.69%, 불안장애 1.93%, 수면장애 1.76%, 기타 정신질환 5.59%로 헬스케어산업 종사자들보다 모든 면에서 낮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헬스케어산업 종사자들의 정신질환 비교 위험도는 기분장애 1.13배, 불안장애 1.15배, 수면장애 2.21배, 기타 정신질환 1.44배로 높게 평가됐다.

연구팀은 헬스케어산업 종사자들의 정신질환 유병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로 시간 압박, 과중한 업무, 야간근무로 인한 수면박탈, 의사결정의 불확실성 및 낮은 자율성 등을 꼽았다. 업무현장의 이런 스트레스 요인들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이는 의료계 종사자의 30∼40%가량이 번아웃(burnout)으로 고통받는다는 이전 연구결과와 같은 맥락이다. 번아웃은 만성 스트레스 때문에 자기 일과 능력의 가치에 의문이 더해진 소진(탈진) 상태를 가리킨다. 번아웃은 결과적으로 우울증 위험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연구팀은 의료계 종사자들이 갈등(충돌, 마찰)이나 폭력적인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점도 정신질환 유병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신체적, 정서적 폭력을 경험하면서 우울감을 느끼거나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사가 환자에게서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 응급실에서는 이런 폭력 사건에 따른 스트레스와 불안을 견디다 못해 응급실을 떠나거나 아이를 유산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는 게 대한응급의학회의 설명이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한 응급의학 전문의가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대한응급의학회 소속 이형민 전문의(고대구로병원)는 "2010년부터 5년 주기로 응급의학 전문의들을 조사한 결과, 비교적 이른 나이인 45세를 전후해 응급실을 떠나려는 현상이 눈에 띄는 특징"이라며 "이는 스트레스와 폭력 등의 직무 연관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모열 교수는 논문에서 "의료기관 노동자들은 이런 폭력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계속 일을 하게 되면서 과거 사건들을 떠올리게 되고, 이는 잠재적 위험과 관련된 불안을 다시 경험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며 "'건강지킴이'의 건강을 보호하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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