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춘추]
유지우 인구보건복지협회 대전·충남지회 전문인구교육 강사


얼마 전 23년 만에 60%가 넘는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참정권을 지닌 어른들이 투표소로 향하던 그날 청소년들은 '투표권'을 요구하며 곳곳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가졌다. 몇몇 어른들은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을 향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와 같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반면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부정적 시선은 '세대 차이' 때문이라고 말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시대의 변화'를 외쳤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 '세대 차이'라는 이름의 엄청난 간극. 그 차이는 정녕 함께 할 수 없는 것 일까. 하지만 놀랍게도 세월을 아우르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철수와 영희'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양성평등 인식조사(2016년 20~30대 성인 1000명과 청소년 500명을 대상)'에서 철수와 영희는 세월을 역행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라고 말하는 어른들과 '우리는 다르다'라고 말하는 청소년들 모두 순위까지 동일하게 답했다. 가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일반적인 활동을 묻는 문항에 성인과 청소년 모두 1위로 응답한 것은 '아내(어머니)는 요리, 남편(아버지)은 TV시청'이었다. 2위는 '아내(어머니)는 자녀를 교육하거나 돌본다, 남편(아버지)은 거실 소파 위에 눕거나 앉아있다', 3위는 아내(어머니)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한다, 남편(아버지)은 컴퓨터 혹은 휴대폰을 사용한다'로 나타났다.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변했어도 우리가 떠올리는 남·녀의 모습은 세대 차이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2번 3번 돌아도 '철수와 영희는' 그 모습 그대로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과서 속 삽화처럼 생각마저 굳어 버렸을지 모른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최근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트렌드를 반영하듯 근로시간 단축을 골자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들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단순히 직장의 문제에 국한돼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칼퇴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책임질 가정이 아닐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를 떠올려 보라. 당신의 가정을 기억해 보라.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적어도 20년 전의 철수와 영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케케묵은 교과서 속 삽화처럼 굳어버린 남·녀의 성역할 따위에서 탈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가정 양립의 또 다른 이름인 워라벨의 시작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인식을 바꾸면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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