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외계인에 대한 영화들은 공통점이 많은 수준을 넘어 얼개가 거의 똑같다. 대단한 첨단 기술과 무기를 갖춘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러 찾아온다. 지구인들, 특히 미국의 백인 남성들이 외계인의 약점을 기막히게 찾아내어 소수의 영웅적 희생으로 지구의 평화를 되찾는다. 외계인 영화를 보면서 초절정의 문명을 갖춘 외계인들이 왜 하나같이 정복과 지배를 위해서 지구를 찾아오는지 의문이 든다. 고도 문명을 갖춘 집단이라면 마땅히 파괴와 살상을 통해 다른 세계를 정복하기보다는 대화와 소통을 바탕으로 평화적인 교류를 추구해야 하지 않은가. 외계인 접촉이 전무한 지구에서, 왜 이렇게 외계인을 편벽된 관점에서 침략자로 설정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지구인이 가진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의 반영이 아닌가.

제주에 들어온 난민을 어떻게 대할지를 두고 상반된 집회가 서울에서 얼마 전에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 한쪽은 난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 대처를 주문하였고, 다른 한쪽은 난민들이 우리 사회의 안전과 질서에 위해를 가할지 모르므로 엄격하게 관리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뉴스를 설핏 보니, 국민이 먼저라며 난민법을 반대하고 엄격한 관리를 요구하는 쪽의 집회 규모가 더 크다. 왜일까. 아마도 낯선 존재에 대한 불안과 불신 때문이 아닐까.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법외노조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 등 강경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때 전교조를 벌레로 지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외노조화 조치를 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러한 전 정부의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촛불 정신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정권은 청와대 차원에서 전교조에 탄압을 추진했고, 대법원조차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교조 관련 재판 거래를 검토했다. 헌정 문란 수준이다.

돌이켜보면 전교조는 왜 그렇게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사갈시 되고 탄압을 받아왔는가. 어쩌면 전교조가 우리 역사에서 낯선 집단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금전 만능사회에서 촌지 봉투 거부를 하고, 교실에 가둬 시험 준비나 시켜야 하는데 아이들을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들로 산으로 데리고 나가고, 학생을 지배와 통제 상태에 둬야 하는데 인권을 강조하고, 국가가 만든 교육과정을 넘어 사회적 교육과정을 부르짖기도 하고, 민주적 학교 문화를 통해 학교혁신을 실천하기도 하고, 경쟁주의 교육의 표상인 성과급 폐지 운동에도 앞장서고….

한마디로 전교조는 교육계에 만연한 기존의 권위적 질서와 규율을 거부하는 유일한 집단이었다. 또한 전교조는 연구와 실천으로 교육을 바꾸기 위해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노동조합이었다. 전교조를 빼놓고 한국의 교육혁신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새로움, 이런 낯섦이 이제는 바야흐로 익숙함으로 긍정으로 변하고 있다. 전교조가 한 일, 하고자 하는 일이 점점 인정받는 만큼 우리 교육이 발전하고 성숙하고 있다. 이번 지방자치 동시선거에서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국민의 인정과 포용의 측면이 분명 있다.

문명의 발전은 수구와 폐쇄가 아니라 낯선 존재를 수용하고 기존의 자기 존재를 변혁하는 데서 성취된다. 외계인, 난민, 전교조…. 각각의 문제 차원과 맥락은 상이하다. 그러나 새롭고 낯설다 해서 배제하고 적대하는 한 성숙도 발전도 없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법외 노조화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주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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