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단 제공
▲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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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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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칠 뒤에 숨은 섬뜩한 광기 '리처드 3세'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는 4대 비극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 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주인공 리처드 3세(1452~1485)의 광기 어린 매력 때문이다. 영국 플랜태저닛 왕가의 마지막 왕인 그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악인'으로 꼽힌다.

워낙 인기 많은 작품이지만 '리처드 3세'는 올해 유난히 국내서 많이 공연됐다. 스크린서 활약하는 황정민이 지난 2월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리처드 3세'를 택해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랐다.

또 LG아트센터는 지난 14∼17일 독일 연극의 거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리처드 3세'를 초청했다.

이어 국립극단은 지난 29일 프랑스 연출가 장 랑베르-빌드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리처드 3세'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렸다.


황정민의 '리처드 3세'가 비교적 원전에 충실한 작품이었다면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는 현대 실험극의 요소를 듬뿍 가미한 작품이었다.

장 랑베르-빌드는 오스터마이어의 연출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원전을 남녀 2인 광대극으로 재해석했다.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잠옷을 입은 리처드 3세는 피에로의 몸짓을 흉내 내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채 섬뜩한 대사를 내뱉는 리처드 3세의 모습에서 그의 광기와 잔혹함이 더욱 도드라진다.

자신의 형인 클래런스를 암살하고 선왕의 충신인 헤이스팅스 경을 처형하는 장면은 풍선 터뜨리기로 은유 된다. 왕위에 오른 후 잔혹한 살육극을 벌이는 장면은 놀이동산에 흔히 볼 수 있는 공던지기로 표현했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여 공을 쥐여주고 귀족 인형을 맞춰 넘어뜨리도록 한다. 웃고 즐기며 공던지기에 동참한 관객은 살육극의 공범자가 된 셈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리처드 3세는 자신을 제외한 왕가의 모든 혈육을 살해한다. 본가인 플랜태저닛 왕가는 이미 장미전쟁 이전 혈통이 단절됐고, 방계인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 역시 리처드 3세가 벌인 살육극으로 그를 제외한 남계혈통이 끊어지고 만다.

결국, 리처드 3세가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플랜태저닛 왕조는 멸망하고, 영국의 왕관은 튜더 가문으로 넘어가고 만다. 왕위를 굳히고자 벌인 살육극이 오히려 가문을 멸문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리처드 3세의 최후는 무대 2층에 설치된 왕좌에서 미끄러져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장 랑베르-빌드는 공중에 매달린 채 '리처드 3세'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인 "말을 다오, 말을 다오, 말을 가져오면 내 왕국도 주리라"를 읊조린다.


2주 앞서 한국을 찾은 오스터마이어作 '리처드 3세' 역시 그의 최후를 정육점의 고기처럼 공중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장 랑베르-빌드와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로르 올프도 칭찬받을 만하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로르 올프는 쉴 새 없이 의상을 바꿔가며 남녀를 넘나들며 열연을 펼친다.

극 중 그녀가 맡은 인물만 앤 부인, 엘리자베스 왕비, 요크 공작부인, 버킹엄 공작, 시종, 자객 등에 이른다. 그녀가 없었다면 등장인물만 40명이 넘는 원전을 2인 극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터다.

셰익스피어의 원전은 영어로 쓰였지만, 장 랑베르-빌드와 로르 올프의 대화는 프랑스어로 진행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플랜태저닛 왕조 시절 영국의 궁중 언어가 프랑스어였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편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다. 7월 1일까지 공연하며, 티켓 가격은 2만∼5만 원. ☎ 1644-2003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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