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신간 '피싱'

고기잡이를 못했다면 수많은 고대문명도 없었다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신간 '피싱'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인류가 물고기를 잡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답은 다들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인간에게 없어선 안 될 식량자원이지만 어로(漁撈)는 수렵이나 채집보다 평가절하됐다.

저명한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 캘리포니아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 '피싱'(을유문화사 펴냄)을 통해 현대 문명을 탄생시킨 기반으로서 고기잡이의 역할과 의미를 본격적으로 규명한다.

페이건 교수는 인간이 어로 생활을 시작한 시기는 200만 년 전으로 인류의 역사만큼 길다고 추정한다.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딸 때 물고기도 잡았다는 것.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18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인류 화석과 함께 발견된 유물과 동물뼈 중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자잘한 뼈도 있는데, 이를 통해 조상들이 메기 같은 어류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인류 조상들은 한참 동안 우연히 생긴 물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 그때그때 배를 채우는 기회주의적 고기잡이를 지속했다. 그러다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생선을 말려서 보관하는 방법을 익히게 됐다.

빙하기를 지나면서 어로 생활은 또 한 번 전기를 맞았다.

빙하기 말기인 1만5천 년쯤 전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자 강의 유속이 느려지면서 습지대, 삼각주, 강어귀가 형성됐다. 이와 함께 해안이나 호수, 강의 수산물이 풍부해지자 인간은 그물, 창, 낚싯바늘, 낚싯줄, 덫 등 한층 정교해진 도구를 고안해냈다.

6천 년 전부터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안정되자 물가에서 공동체를 이뤄 정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초기 문명이 대부분 강어귀, 호수, 강 인근, 아니면 대양에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서 꽃피운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고기잡이를 위주로 한 사회는 도시와 상설군대를 갖춘 문명사회로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기엔 어류의 자원 기반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어업 공동체 족장들도 나름의 위세와 부를 누렸으나 왕이 되진 못했다는 것이다.

고기잡이가 인류 문명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았지만, 문명을 지탱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 파라오나 캄보디아의 왕 같은 고대 지배자들은 신전, 무덤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짓는 데 동원된 노역자들을 먹이기 위해 보존 처리된 물고기를 곡물과 함께 지급했다.

이때부터 물고기는 상품으로 거래됐다. 전성기 로마제국에선 고등어 같은 어종이 선원이나 군인의 일반 식사 메뉴로 밥상에 오르고, 발효된 생선 소스인 가룸이 널리 거래될 정도였다.

고기잡이는 식량 확보라는 기본 역할 외에도 문명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교역, 이주, 탐사를 이끈 기술인 배를 발달시킨 원동력이 됐다. 어로가 활발하지 않았다면 거주 공간의 확대와 문명 간의 연결이 그만큼 더뎠을 테고 문명의 발전 속도도 지금보다 훨씬 느렸을 것이다.

페이건 교수는 고기잡이와 관련한 연구가 아직 변변한 자료도 축적돼 있지 않을 정도로 요람기에 머물러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고기잡이가 없었다면 수많은 고대문명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부와 어부가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파라오는 기자의 피라미드를 세우지 못했을 테고, 캄보디아의 그 웅장한 앙코르와트 사원도 현재와 같은 위용을 뿜지 못했을 것이다. 페루 북부 연안에 있는 모체의 왕들은 연안의 안초비잡이 어부에게 크게 의존했는데, 만약 그 어부들이 없었다면 황금으로 뒤덮인 장엄한 국가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미나 옮김. 568쪽. 1만8천9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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