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수필가)

세상에는 소소한 행복이 곳곳에 널려있다. 나는 행복을 거저 얻기를 원치 않는다. 일상에서 짬을 내 손수 만들고 누리길 원한다. 더불어 그 행복을 친한 벗이나 지인과 나누길 좋아한다. 식물을 키우다 보니 이른 새벽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밤과 낮이 바뀌는 푸르스름한 빛의 경계, 그 찰나의 순간과 고개를 수굿하게 떨군 개양귀비가 꽃봉오리를 들거나 털북숭이 껍질을 벗는 몸짓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손을 뻗으며 하늘이 닿을 것 같은 테라스 공간을 나는 '하늘정원'이라 부른다. 삼 년 째 머무는 24층 복층 아파트는 나에겐 선물 같은 집이다. 안방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거실에선 저무는 노을을 볼 수 있는 자연을 품은 집이다. 멀리 녹음에 휩싸인 상당산성 성벽이 희끗거리고, 가까이엔 청주의 정기를 품은 우암산을 마주한다. 복잡한 일상과 고된 하루를 이겨낼 수 있는 기운을 하늘정원에서 얻는다. 하늘정원은 그리움의 공간이다. 친정어머님처럼 틈나는 시간을 쪼개 토종 꽃과 나무를 가꾸고 있다. 예전 툇마루에 앉아 즐겨보았던 봉숭아꽃과 채송화, 도라지꽃과 나팔꽃, 백합 등을 옮겨놓은 듯 정원에서 피어난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채비없이 몸이 먼저 하늘정원에 오른다. 몸을 숙여 풀을 뽑고,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받아 천천히 물을 주며 식물에 말을 건다. 예전의 어머님처럼 꽃과 대화하기다.

하늘정원엔 남다른 묘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벽잠을 원하지만, 나는 잠보다 꽃 가꾸는 일이 재미있다. 매일 맞는 동살이 새롭고, 이슬 맺힌 비비추가 싱그럽다. 24층까지 날아와 난초 잎 틈새에 고요히 잠든 무당벌레와 바지런한 꿀벌도 기특하다. 한껏 부풀어 터질 듯한 도라지 꽃봉오리와 밤새 한 뼘 이상 줄기가 자라 나뭇가지를 단단히 휘감은 더덕줄기 등속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식물에 감탄사를 쏟아지게 한 대상을 어찌 다 열거하랴.

요즘 분홍빛 끈끈이대나물 꽃이 한창이다. 아파트 숲에서 혼자 보기 아쉬운 절경이다. 꽃이 스러지기 전에 지인이라도 초대하여 꽃 잔치를 벌여야 할 듯싶다. 잔치라고 하여 무언가를 장황히 벌인다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에 맞는 몇 분과 활짝 핀 꽃무리 아래서 얼굴 마주 보고 세상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지상의 가물거리는 별과 정원의 꽃, 신이 내린 바람을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새로운 기운을 얻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거다. 하늘정원은 예전 '바람골'이란 명성답게 바람이 많다. 그 바람을 믿고 처마를 만들어 풍경을 달아 청아한 소리를 즐긴다. 바람만큼 햇볕도 강해 화분에 조석으로 물을 주어야 한다. 썩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식물이 필요한 햇볕과 바람,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부족하랴. 머지않아 작디작은 개양귀비 씨를 받아 지인과 나눌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자연을 섬기니 절로 무상무념에 든다. 하늘과 바람, 산, 그리고 내가 키운 꽃과 나무가 바로 처방약이다. 일상에서 불쑥 일어난 뿔 같은 화도 금세 스러진다. 어디 그뿐이랴. 꽃과 대화를 수시로 하니 마음의 궁핍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곧 도량'이라고 했던가. 풍경소리 청량하고, 도량 가득 달빛이 내리니 무엇이 부족하랴. 산사에 선승처럼 홀로 정원에 서 있는 날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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