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성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교회에서도 많이 부르지만 아이들 학교 행사나, 단체·모임에서 곧 잘 부르는 노래다. 그런가하면 가수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엔 난 몰라~”도 노래방에서 많이들 부른다. 그렇다. 세상에 사랑받지 않아야 될 사람이 어디 있고, 또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누구나 존중받고, 또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만큼 누구를 사랑하고 존중해 주고 있을까.

최근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 중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대구의 한 빌라에서 입주민들이 ‘장애인 입주를 결사반대한다’는 연판장을 붙여놓은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에서 보복운전 방지용 문신문양 쿨 토시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을 때다. 두 가지 모두 관용과 배려가 없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 해 우리는 촛불시위를 통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대한민국의 1000만 ‘촛불시민’ 모두에게 2017년 인권상을 수여했다. 지난 촛불의 물결이 정치를 바꿔 놓았을지 몰라도 성숙된 시민사회로 가는 길은 ‘아직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점점 가슴보다는 머리로,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의 3만 달러 돌파는 거의 확실하다고 하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OECD 35개 회원국 중 관용사회부문 사회통합지수가 거의 꼴지 수준인 31위(2014)인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도 이제 경제적 수준이 높아진 만큼 선진국민의 면모를 갖춰야하지 않을까싶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작가는 할 수만 있다면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톨레랑스(tolerance)’라고 했다. 톨레랑스는 원래 칼빈과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타종교에 대한 관용 정신이 유럽에 생겨나면서 시작된 것이고, 이후 시민혁명에 의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으로 자리 잡게 됐다. 프랑스의 톨레랑스가 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면서 사회정신으로 이어졌다면, 우리도 촛불시위라는 정치적 인식의 변화를 동력으로 이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세상을 밝히는 사회인식의 전환을 견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관용과 배려라는 것은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는 노래처럼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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