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신 충남교육청 학교정책과장

7월이면 주 52시간 근무가 도입된다. 논란도 많고 우려도 많았지만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한 변화는 시작되었다.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2004년부터 주 40시간이다. 그러나 연장근로(12시간)와 휴일근로(8+8)를 더해 총 68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했다. 생산성 하락과 경제발전 논리에 대기업의 편을 들어준 사실상의 편법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세 번째다.

이번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은 아마도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4차산업혁명, 창의성, 잡 쉐어링, 저녁이 있는 삶 등일 것이다. 시대와 사회가 삶의 질을 고민하고 창의성과 생산성을 위해 건강한 휴식과 여유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과로학교에서 쓰러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주당 학습노동시간(학생들에게 공부는 노동이다)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야간자습, 학원, 숙제시간 등을 합치면 주당 학습노동시간은 80시간이 넘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 말에 ‘스라벨’이 있다. 스쿨(school)과 라이프(life)의 발란스(balance) 즉 공부와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어른들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없는 저녁 풍경은 삭막하거나 퇴폐적일 가능성이 있다. ‘신은 부모들이 함부로 살지 말라고 자식을 주셨다’고 한다. 저녁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어야 건강하고, 여유는 아이들이 있을 때 아름답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 효율화 지수’는 꼴찌에 가깝다. 그동안의 입시환경이나 직업환경은 오래 앉아 암기해야 경쟁력 있는 구조였다. 장시간 근로가 사회를 지탱해 왔듯 야간자습, 학원 등의 장시간 학습이 아이들의 직업과 미래를 결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휴식에서 생기는 열정과 창의성 그리고 소통이 최고의 능력이 되는 시대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아이들의 최고의 능력도 창의성과 열정, 자기통제, 소통과 같은 것들이다. 말로는 4차 산업사회 인재를 키운다고 하면서 정작 굴뚝 사회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다. 아이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삶을 제대로 준비하게 하지 못하는 것, 심지어 방해까지 하는 것은 명백한 업무 방해에 해당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아이들에게도 ‘스라벨’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충남교육감 재선 소감 중 ‘이제부터 필요한 부분에는 속도를 내겠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이들은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힘이 될 추억도, 삶을 지탱할 힘도, 세상을 바라볼 철학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속절없이 어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장시간 학습노동에 지쳐 붙잡을 시간도 주지 않고 하직인사를 해서 부모나 어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주 40시간 학습노동을 준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라! 최대 52시간 학습노동 시간법을 제정하라!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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