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영원한 정치 거목…김종필 전 국무총리 타계

1면-김종필.jpg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88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만난 3김. 왼쪽부터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치 풍운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서울시 중구 자택에서 향년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달변가로 유명했던 고인은 적절하고도 위트 있는 발언으로 늘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충청권을 텃밭으로 하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인물이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고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통합 논의 끝에 1990년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이후 당내 주류 민주계의 김영삼과 갈등을 빚은 김종필은 1995년 대표직 사퇴 후 자민련을 태동시켰다. 그의 제2 정치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창당 직후 열린 1회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은 충청권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다. 충북 주병덕 지사, 충남 심대평 지사, 대전 홍선기 시장이 자민련 소속 첫 광역단체장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선거에서 강원 최각규 지사도 배출해 자민련은 충청을 벗어나 강원에서도 지지 기반을 마련했다.

시장·군수선거에서는 충남 15개 시·군을 싹쓸이하고 대전 4개 구청장, 충북 청주시·청원군 등에서 당선자를 냈다.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대전 7석, 충남 12석, 충북 5석을 석권, 충청을 장악했다. 전체 50석을 차지해 원내 3당에 오르기까지 했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까지 자민련의 위력은 이어졌다. 자민련은 또다시 충청권을 모두 휩쓸었다. 홍선기 대전시장과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연임에 성공했으며 이원종 충북도지사가 새롭게 합류했다.

기세를 이어가던 자민련이지만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선 충남 한 곳에서만 승리를 거두고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힘을 잃었다.

충북은 이원종 지사가 연임에 성공했으나 그는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말을 바꿔탄 상황이었다.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며 국민의 지지를 잃었고 이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4석에 지지율 2.8%에 그쳐 비례 1번으로 출마한 김종필이 낙선했다.

이후 그는 정계은퇴를 하면서 당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2006년 잔류파가 한나라당과 합당을 발표하고 자민련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김 전 총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충북 정치인은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 의원에게 김 전 총리는 ‘정치적 스승’과 같다.

정 의원은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소속으로 충북 진천·음성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특별보좌역도 맡았다.

일명 ‘JP 사단’ 으로 분류되는 정 의원은 정진석(공주부여청양), 심대평 전 충남지사와 함께 장례위원으로 포함돼 있다.

평생 2인자의 삶을 살아 온 김 전 총리의 존재감은 충청대망론과 궤를 같이 해왔다. 그는 정계 은퇴 후에도 정 의원 등을 만나는 자리에서 충청대망론을 강조했다는 것이 지역 정치권의 전언이다.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인이라는 평도 있지만 그를 아는 정치권 인사들은 JP의 존재는 ‘핫바지로 홀대받던 충청인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세워준 정치 거목’이라고 평가한다.

김용언 기자 whenikiss@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