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토요일에 출근해 점심 먹고 퇴근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 같은 세상엔 꿈도 못 꿀 일이지.” ‘근로시간 단축’을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질 때면 사회생활 선배들은 어김없이 과거를 회상한다. 젊음을 직장에 받쳐왔던 그들의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회상을 듣고 있노라면 누군가는 더디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 세상의 변화는 이렇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기조에 따라 정부는 내달부터 단계적으로 주52시간 근무를 골자로 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시범시행을 통해 조정이 이뤄지겠지만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보면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분야별로는 필수적으로 잔업이 발생함에 따라 이를 집에서 수행하는 다른 의미의 재택근무도 생길 수 있다. 또 대기업 이외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실현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만을 준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더 일해서 벌이를 늘려야 하거나 납기일을 맞춰야만 하는 제조업 근로자들에게는 족쇄가 될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가 생산성과 고용 증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워라밸은 결국 근로자들에게 또다른 형태의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정부와 각 업계가 의견을 조율함과 동시에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인식 개선에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업무와 비업무의 경계가 모호한 수많은 직종 및 직군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들에 대해 단위기간이 대폭 늘어난 탄력 근무제를 적용함은 물론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근로환경 등의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첫 술을 헛되이 뜰 수는 없는 만큼 모처럼의 워라밸 정책이 역풍으로 돌아오질 않기 바래본다.

이인희·대전본사 경제부 leeih5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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