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곧잘 동쪽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오랜 싸움 끝에 그는 망향(望鄕)의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래서 진(秦)에서 약탈한 재물과 미녀를 다 거두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한생(韓生)이란 자가 그것을 간했다. “관중(關中)은 산하(山河)가 조격(阻隔)되고 사면이 색절(塞絶)되어, 지세가 견고할 뿐 아니라, 지미(地味)도 비옥하니,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여 천하에 패권(覇權)을 잡고 제후에 호령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咸陽)은 불타다 남은 궁전, 마구 파괴된 황량한 초토로 화한 와력(瓦礫)의 산더미였다. 그보다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성공을 과시하고 싶었다.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항우는 간지(諫止)를 듣지 않았다.
한생(韓生)은 항우의 면전에서 물러나자 사람에게 말했다.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로써 겨우 관(冠)을 썼을 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틀림없는 말이다.” 향우의 이 말은 어딘가 인간 통유(通有)의 약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말에서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비단 옷을 입고 낮에 간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비단 옷을 입고 밤에 간다’(漢書 項籍傳) 기재인데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는 금(錦)을 수(繡:수놓은 옷)로 되어 있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운영·前대전둔산초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