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뷰티풀 퀘스천'

노벨상 프랭크 윌첵 "과학적 영감의 원천은 아름다움"

신간 '뷰티풀 퀘스천'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정삼각형, 정사각형처럼 모든 변의 길이와 내각이 같은 정다각형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모든 면이 동일한 정다면체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이렇게 다섯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찍이 이 같은 사실을 깨달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들 다섯 개 입체도형으로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창조적 이론을 창안했다.

플라톤은 세상을 이루는 근본물질(원소)이 다섯 개 도형에 대응한다고 봤다. 불=정사면체, 물=정이십면체, 흙=정육면체, 공기=정팔면체, 그리고 정이십면체는 우주를 구성하는 제5원소인 에테르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과학상식에 비춰보면 얼토당토않은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대가인 프랭크 윌첵은 신간 '뷰티풀 퀘스천'(흐름출판 펴냄)에서 플라톤의 논지가 과학적 원리의 핵심을 정확하게 찔렀다고 지적한다.

윌첵은 물질의 최소입자인 쿼크가 높은 에너지에서 자유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양자색역학의 점근 자유성'을 발견한 공로로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플라톤의 물질 이론이 비록 틀렸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플라톤의 관점은 몇 가지 면에서 현대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우선, 만물이 몇 가지의 기본단위로 이뤄졌다는 생각인데, 이는 지금까지도 과학의 기초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가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막연히 더는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근원으로 원자를 상정했는데,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작은 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뤄져 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세 개의 쿼크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근대적 역학이론을 탄생시킨 아이작 뉴턴의 과학적 방법론인 '분석과 종합' 역시 플라톤적인 사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뉴턴은 만물의 복잡한 움직임을 몇 개의 단순한 운동법칙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자연의 구조를 대칭적 형태로 파악한 플라톤의 아이디어는 이후 2천400년 동안 과학을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기초를 제공한 17세기 독일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완벽한 대칭 구조인 5개 정다면체로 구성된 우주 모형을 상정하고 연구하던 중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했다.

19세기 전자기 현상에 대한 통일적 기초를 마련해 현대 물리학의 효시로 불리는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대칭성을 응용해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그는 전기와 자기를 서술하는 방정식에 새로운 항을 추가하면 대칭적 형태를 띠면서 수학적으로 타당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고전역학을 대신할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유도할 때도 국소 대칭(local symmetry) 원리를 이용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개의 힘(중력·전자기력·약한 핵력·강한 핵력)을 설명하는 현대의 코어이론(표준모형)에도 국소대칭 원리가 공통으로 적용된다고 한다.

수학적 대칭과 물리법칙 사이의 이 같은 긴밀한 관계는 20세기 초 독일 여성 수학자 아말리 에미 뇌터에 의해 증명됐다.

윌첵은 외견상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물리적 세계가 단순한 대칭 구조와 수학적 규칙으로 환원되는 것을 두고 자연에 내재한 '아름다움'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책에서 이 세계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명제를 제시한 뒤 역사 속 과학자들의 아이디어와 이론을 통해 풀어낸다.

그리고 과학적 영감의 주된 원천이 바로 이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이때 아름다움은 자연이 갖는 예기치 못한 수학적 단순성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지적 쾌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윌첵은 자연의 예술적 스타일을 구성하는 두 가지 미적 원리를 '대칭'과 '경제성'으로 요약한다.

조화와 균형을 뜻하는 대칭과 짝지어진 경제성은 최소한의 방법으로 다양한 효과를 얻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보면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가 섞인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인 걸 알 수 있다. 이는 단지 경제성의 원리가 발현된 결과다.

이 원리는 자원과 정보가 제한된 자연적 상태에서 특정 구조물을 만들 때는, 가급적 단순하고 동일한 부품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조립하는 것이 유리하고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물리적 실체에 투영된 아름다움에도 특별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자연은 예술가처럼 고유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자연의 예술을 음미하려면 자연만이 갖고 있는 스타일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박병철 옮김. 552쪽. 2만5천원.

abullapia@yna.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