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무드, 충청권 숙제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다
평창올림픽 계기로 남북평화 새 전기 마련
북한과 대화에 겨레말큰사전 공동 편찬 제의
남북관계 속도따라 다양한 측면 협력 가능
블랙리스트 사태 대비한 제도적 장치 구축
프로야구 활성화위해 한화이글스 구장 개선
2030년까지 전국 단위 50개 문화도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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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세종정부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 광장. 도종환 장관을 비롯해 수백 여명의 문체부 직원이 한데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서 있는 도 장관은 물론이고 직원들 모두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 하트를 그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도 장관 취임 1주년을 맞아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단체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진행된 것이다. 환한 날씨 속에 직원들 얼굴에는 구김살 없는 미소가 흘렀고,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 파동과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관광객 감소 등 연이은 메가톤급 악재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도 장관의 성적표가 직원들 얼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부드러운 직선’, ‘직선같은 곡선’의 리더십을 펼친다는 평을 듣고 있는 도 장관을 만나 숨 가쁘게 달려 온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물었다. “제가 작년에 장관직을 맡았을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로 초토화되어 있었고, 체육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적자 올림픽에 대한 우려가 높았습니다. 거기다 관광업계는 중국과의 사드 문제로 중국 관광객 감소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문화, 체육, 관광 중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그러나 1년 여가 지난 현재 상황은 대반전이다.

지난 5월 8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발표됐고, 최근에는 일반 국민과 현장 전문가 8000여 명의 의견을 수렴해 ‘사람이 있는 문화, 문화비전 2030’도 발표됐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준비 과정에서 관심 부족과 기업후원 저조 등 여러가지 문제가 불거졌지만, 흑자 올림픽을 실현했고 무엇보다도 남북평화에 새로운 분기점이 된 평화 올림픽으로 역사에 기록될 성대한 잔치로 마무리됐다. 관광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지난 4월 외래 방문객 통계를 보면 중국시장의 경우 개별 관광객 위주로 지난해 대비 60.9%가 늘었고, 한때 북핵 위기로 발길을 돌렸던 일본 관광객도 29% 증가했다.

도 장관은 지난 1년간 최대 성과로 평화 올림픽을 꼽았다. “남북한 공동 입장과 단일팀 등으로 평화 올림픽이 실현되면서 남북평화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습니다. 남북교류의 물꼬를 튼 셈이죠.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체육과 문화 교류가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평화의 길을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의 운명이 바뀌고 국운이 회복하는 데 문화와 체육, 관광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도 장관은 남북 간 평화와 공존, 화해 협력의 건실한 토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언어’와 ‘역사’에서의 동질성 회복을 강조한다. 오랜 분단기간을 통해 언어에서 이질화된 부분이 적지 않은 만큼 언어에서 동질성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핵화 등 정치군사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질화된 언어를 먼저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가장 먼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사업을 얘기했습니다.”

역사에서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는 ‘2018년 특별전 대고려전’과 북한 문화유산 남북 공동조사·보존사업 등 남북간 상호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교류사업을 추진한다. “우리 역사에서 남북이 같은 민족으로 분단되지 않았을 때가 바로 고려와 조선입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남북이 공동 발굴해 유물이 출토되면 우리 민족의 공동 유물이 됩니다. 남북공통 문화유산이 되는 거죠. 이를 통해 역사의 동질성 회복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도 장관은 이후 남북관계의 개선 속도에 따라 학술과 문화, 스포츠 교류에서 신규 협력 사업 등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적극적인 형태의 협력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포츠 교류와 관련해서는 대한체육회와 종목별 협회,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남북체육교류 활성화 방안이 협의되고 있다. 스포츠는 다른 분야와 달리 정치적·이념적 색채를 띠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남북 간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고 스포츠 교류를 통해 다른 분야로까지 교류가 확산된다. 문체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구축된 남북한 스포츠 교류협력의 분위기와 동력을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18 세계창원사격선수권대회 등 국제경기대회 참가와 종목별 친선경기 등 다양한 종목에 걸쳐 활발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도 장관은 자신도 피해자였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 재발 방지에 정책적인 노력과 함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5월 8일 “국가가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함으로써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국민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정부를 대표해 사과드린다”며 공개적으로 사과도 했다. 도 장관은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특히 정권의 성향에 따라 정책과 제도가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가칭 ‘예술가의 지위 및 권리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예술가권리보호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문화예술 공공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지원 사업심의방식을 고도화하는 등 조직과 사업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문체부는 최근 2030년까지 전국 단위 50개 문화도시를 지정해 관광매력 거점도시도 육성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문화비전 2030'을 발표했다. 도 장관은 이와 관련 “고령화와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쇠퇴하는 지역을 회복하고 지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화도시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역사전통과 예술, 문화산업, 사회문화 등 분야별로 50여 개 문화도시를 지정한다. 시설 건립 등 하드웨어 중심이 아닌 문화적 콘텐츠, 문화인력 등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를 구축하는 것이다. 문체부는 시민 주도의 협치 과정을 주요 기준으로 문화도시를 지정하고 문화적 장소와 콘텐츠, 인력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도 장관은 충청권 프로야구팬의 오랜 숙원인 대전 야구장 신축과 관련해서는 적극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 장관은 “최근 충청지역을 연고로 하는 한화 이글스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지역팬들의 관심과 응원을 많이 받고 있다”며 “프로야구 활성화를 위해서도 쾌적하고 현대화된 구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 지역 구장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한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전구장도 대전시에서 한화 이글스와 충분히 협의하고 구장 건립을 위한 사전 행정절차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기재부 등 관계기관과 적극 협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명 시인 출신인 만큼 작품 활동 여부에 대해 도 장관은 “꽃이 피고 지고, 연두의 잎이 초록으로 바뀌는데 어떻게 시를 안 쓸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저녁에 걷기운동을 하다가 버려진 잡목숲이라고 생각했던 곳인데 5월이 되니 꽃밭으로 바뀐 곳이 있습니다. 하찮게 바라보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도 저마다 빛나는 내면을 갖고 꽃피는 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겁니다. 그런 반성과 성찰이 시가 됩니다.”

도 장관은 “틈틈이 시를 쓰고 있지만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장관 재직 중에는 발표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중에 때가 되면 작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인에서 시인으로 다시 돌아가 그가 내놓을 시집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 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김일순 기자 ra11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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