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칼럼]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도이치방송교향악단 대전 공연 리뷰

지난 1일 지휘자 피에타리 인키넨이 이끈 도이치방송교향악단(DRP)과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대전 공연은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닌 단체와 연주자의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준 감동적인 무대였다. 고전시기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은 정통 독일 교향악단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이며,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역시 탁월한 러시아출신 바이올리니스트가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회심의 곡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첫 인상을 강하게 전달하려고 하다보면 서곡에서 자칫 힘이 들어갈 수 있는데, 에그몬트 서곡 첫 울림에서부터 단단하고 탄탄한 음색은 과하지 않으면서 격조 있었다. 인키넨의 절도있는 지휘로 베토벤 음악에 내재된 열정을 뜨겁게 전달한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은 이어진 레핀과 협연에서 철저하게 독주자의 흐름에 맞추며 균형을 이룬 모범적인 반주형태를 선보였다.

현존하는 러시아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레핀의 연주력은 명불허전이다. 프로코피에프 작품이 지닌 독특하고 이질적인 음악양식이 섬세하고 예리한 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렀으며 전체적으로 음악에 여유가 있었다. 레핀이 보여준 탁월한 기교와 풍부한 서정성은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에프(1891~1953) 인생 후반기 음악적 특징과도 일치한다.

1935년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2번에는 러시아혁명과 세계대전의 격동기를 거쳐 국외에서 지내고 소련으로 돌아온 작곡가의 음악여정이 그대로 들어있다.

젊은 시절 프로코피에프는 러시아음악을 혁신하며 기존 형식 안에서 역동적이고 개성강한 실험정신으로 유명했다.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에 돌아온 이후 행보는 과거와 같은 강렬한 현대음악이 아닌 전통 클래식음악 기반위에 상대적으로 서정성과 고전적 단순함을 지닌 작품도 남겼다.

이러한 작곡가의 인생과 음악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연주자 레핀이기에 뛰어난 기량으로 1악장의 색채감을 드러냈고 2악장의 유려한 선율을 서정적이면서 날카롭지 않게 표현했다. 고도로 기교적인 기법으로 가득 찬 격정적인 3악장조차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오케스트라와 독주자가 호흡이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빼어난 협연이었다.

후반부 브람스 교향곡 4번 역시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다.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의 강점은 열정과 지성이 결합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어느 악기도 튀지 않고 큰 흐름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게 연주했다는 데 있다. 마치 파도가 몰려오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 속에 개개의 악기 소리는 개성을 지니면서도 온전히 물결 속에 자신의 몸을 맡긴 물방울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조율된 완성도 높은 음향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물결처럼 느끼게 한다.

이렇듯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의 대전연주는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다. 지휘자 인키넨과 교향악단이 들려준 품위 있고 균형잡힌 음악은 진정한 클래식음악의 정수를 맛보려는 목마른 관객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했다. 관객에게는 기쁨을, 음악가에게는 멋진 음악을 추구하고 싶은 도전의식을 선사해 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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