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서 신작 출간…노령연금 과다수급자를 살해하는 근미래 그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소설 '당신의 노후'

박형서 신작 출간…노령연금 과다수급자를 살해하는 근미래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해 널리 알려진 제목이다. 최근 출간된 박형서(46) 작가의 신작 소설 '당신의 노후'(현대문학)는 코엔 형제의 영화나 맥카시의 소설과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이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이 소설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고령사회에서 노인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쉽게 다뤄지는 풍경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간다. 하나의 축으로는 노인들이 다소 미심쩍은 사인으로 죽는 사건들이 각각의 짧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지방 소도시의 한 연립주택 단칸방에서 혼자 살던 77세 노인이 침대 매트리스와 벽 사이 20㎝쯤 되는 공간에 단단히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다. 서울 용산구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88세 노인은 규칙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 아파트 화단에 깊숙이 처박힌 채로 발견된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은 '장길도'라는 70세 노인이 주인공이다. 얼마 전 국민연금공단에서 정년퇴직한 장길도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홉 살 연상 아내를 간호하던 중 아내가 노령연금 100% 수급자가 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 얘기는 장길도의 뇌를 뒤흔든다. 아내가 국민연금공단의 '적색리스트'에 올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장길도는 공단에서 퇴직 전까지 노령연금TF에 소속돼 이런 적색리스트를 처리하는 일을 해왔다. 적색리스트란 공단에 낸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수급해가는 노인들을 분류한 명단이다. 국가와 젊은이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이 노인들을 공단 측은 조용히 살해한 뒤 자살이나 자연사로 위장한다. 이 살인의 명분은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젊은이의 항변으로 이렇게 표현된다.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 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 나라 전체가 그래. 사방이 꽉 막혀서 썩어가고 있어. 하는 일이라고는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게 전부인 주제에 당신들 대체 왜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거야!" (126∼127쪽)

장길도는 사랑하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과 정면으로 맞선다. 장길도는 신체 나이 40대에 100m를 13초에 주파하는 체력을 지녔기에 아내를 죽이러 오는 현역 요원들과 육탄전을 벌여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정보와 자원을 쥐고 있는 거대한 조직, 국가 앞에서 점점 무력해진다.

장길도 역시 젊은 시절 현역으로 일했을 때는 누구보다 조직과 국가에 충성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앗아가려 하자 그 잔인성에 눈뜨게 된다.

"바보, 뭐가 애국이고 국가냐. 수련 씨 같은 착한 노인을 죽여야 유지되는 게 무슨 나라냐. 이따위 나라는 한시바삐 멸망해주는 게 인류에 대한 기여다." (129∼130쪽)

이 소설은 80대 이상 노령 인구가 전체의 40%에 육박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국민연금공단과 같은 공공 기관이 노인들을 죽여 없앤다는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빚어낸 것이긴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미 노인혐오 기류가 자라나 '틀딱충' 같은 말로 표현되는 것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가장 큰 화두가 될 이 문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예고하는 소설이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스릴러 장르를 녹인 강렬한 서사로 읽는 즐거움을 준다.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160쪽. 1만1천200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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