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대전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은 평소보다 많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행사시간 두 시간 전부터 현충원 입구에선 엄마 손을 잡은 어린아이부터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현충원을 찾은 가족들은 양손에 돗자리와 조화 그리고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을 들고 분주히 걸음을 재촉했다.

행사시간이 다가올수록 객석은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하얀 한복을 입고 추념식장을 찾은 이연님(74·여) 씨는 "남편이 월남전에 참전해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안장됐다"며 "자상한 남편이고 아이들이 아빠를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문 대통령이 무연고지참배를 마치고 추념식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객석 곳곳에선 박수와 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전 10시 정각 총성과 사이렌에 맞춘 추모묵념을 시작으로 추념식이 거행됐다.

추념식이 무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진행되면서 곳곳에서는 열사병 환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추념식을 지켜봤다.

국민을 위해 임무수행 중 순직한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식에선 순직한 이들의 이름과 영상이 나올 때마다 동료들은 슬픔과 그리움에 눈물을 훔쳤다.

이제는 기억도 흐릿하지만 전우 생각에 먼발치서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김정수(72) 옹은 "같이 참전한 전우들은 대부분 사망하고 나랑 동료하나 포함해 두명만 살아남았다"며 "현충일이 되면 전우들 생각에 매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누군가의 할아버지, 아버지, 형, 동생이었을 이들을 위해 가족들은 쉽사리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3년 만에 막내동생을 만나러 온 김혜순(72·여) 씨는 동생의 묘비 앞에서 자주 찾아오지 못한 미안함과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제대를 한 달 앞두고 동생이 군 폭발사고로 이곳에 안장됐다"며 "동생이 커피를 좋아해서 '누나 내가 커피 타줄게'라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동생을 위해 커피를 타왔다"며 그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동생을 만나러 온 박태열(68) 씨도 "1984년 동생을 잃어 이제는 무뎌진 것 같은데 6월이 다가오면 동생 생각이 더 나는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30년전 아들을 떠나보냈다는 한 어머니는 주름 가득한 손으로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이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아들을 만나러 왔는데 지금은 나이도 들어서 1년에 한 번 온다"며 "자식 먼저 떠나보낸 마음은 말도 못 하고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그립고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윤지수 기자 yjs7@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