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학교 교수

한국 사회에서 '모럴 헤저드(moral hazard)'는 '도덕적 해이'로 통한다. 지식인 집단이라는 교수들조차도 그렇게 쓴다. 하지만 모럴 헤저드의 정확한 번역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위험'이다. 영어 천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엉터리 번역이 통용되는 이유를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 모럴 헤저드란 용어를 세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미 스탠퍼드대 교수를 역임했던 케네스 애로(Kenneth J. Arrow)교수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모럴은 '해이(relaxation)'가 아니라 '위험(hazard)'한 대상으로 봤다. 그는 제시한 모럴 헤저드 모형은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인(principal)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대리인(agent)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애로 교수의 사고는 도덕을 강조한 맹자의 ‘성선설’보다는 법과 제도를 중시한 순자의 ‘성악설’과 궤를 같이 한다. 그에게 있어서 도덕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위험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그는 느슨하게 풀어진 도덕을 타이트하게 쪼인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모럴의 문제는 시스템으로만 풀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경제학은 지금까지 도덕에 대한 그의 인식과 처방책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10여 년 전, 은행 객장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당시 은행 점원들 앞에는 여러 줄이 길게 서 있었고, 고객들 사이로 가스총을 찬 청원경찰이 어슬렁거리면서 "줄을 서세요!"를 외치곤 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남보다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줄을 서세요"는 도덕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은행 고객들은 객장에 들어서자마자 순번번호표부터 뽑는다. 이제는 줄 설 필요도 없고, 눈알을 부라리던 청원경찰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은행객장 내의 질서만큼은 완벽하게 지켜지고 있다. 바로 그 순번번호표가 시스템이다.

지금 현 정권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면 시스템이 실종된 도덕정치를 계속 하고 있다. 자신들만 도덕적인 집단이고 전(前), 전전(前前)정권은 악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매일 신문지상을 도배질하는 것은 누구누구를 뒷조사하고 구속했다는 소식뿐이다. 물론 죄가 있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 집행은 공정해야 한다. 또 공소시효가 지난 사항에 대해서는 과거 파기를 하고 싶더라도 자제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대통합을 위한 선(善)의 정치요, 촛불 민심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다.

부디 현 정권은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법과 제도를 통한 시스템 정비를 외면하고 도덕정치만을 고수할 경우, 당신들 어느 누구도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신들이 던진 칼날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확률이 아주 높다는 얘기다.

약 20여 년 전, 국민지지율 83%의 고공행진 속에서 ‘한국병 치유’란 기치를 내걸고 서슬 퍼런 도덕정치를 시도하다 IMF금융위기를 자초하고 국가경제를 절단 냈던 YS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 참고로, 퇴임 직전 YS에 대한 국민지지율은 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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