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0 중원미륵리석조여래입상]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0 중원미륵리석조여래입상]
충북 미륵리 세계사 절터, 화강석 다섯개 쌓아 만들어, 사실적·추상적 수법 혼용
충청북도 중원군 미륵리 세계사(世界寺) 절터에 다섯덩어리의 돌을 올려 쌓아서 만든 거대한 부처님상이 있다. 머리위에는 고려불(高麗佛) 특유의 팔각형의 갓을 살짝 얹어 놓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현대조각같다. 참으로 편안하고 멋이 있어서 그냥 그 앞에 앉아서 오래 쉬고 싶었다.
비슷한 시기에 부여 대조사(大鳥寺)에는 같은 크기로 미륵보살을 만들고 논산관촉사에는 좀 더 크게 관음보살을 만들었다. 고려불교가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세 불상을 조성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된다. 이 세 불상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는데 단독으로 서있고 용적으로 장대하며 중국불상이나 신라불상하고는 전혀 닮은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마음에 비치는대로 우리의 부처님을 만들고저 한 것 같다는 것이다. 향토성(鄕土性) 짙은 정서를 지니고 있는 것인데 왜 하필이면 옛 백제 땅에서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내가 주목하는 바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조선시대에로 내려오면서 민불(民佛)이 되고 석인(石人)이 되고 민화(民畵)등으로 계승된 것 같은 것이다.
이 여래상의 앞가슴에 새겨놓은 두 손의 만듦새를 잘 보라. 명품 중에서도 명품이다. 어느 조각가가 저처럼 오묘한 조각솜씨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환조(丸彫)와 부조(浮彫)를 아울러서 동시적으로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회화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을 혼합하고 사실적인 수법과 추상적인 수법을 혼용하는 것인데 우리조상들은 아주 옛날 고조선시대부터도 그런 특수한 기법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돌 조각가들은 단단한 화강석에다 거기에 어울리는 표현수법을 개발 발전시킨 것이다. 화강석이란 돌이 리얼한 묘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한 것이다. 중원미륵리여래상은 돌 자체로서의 생명력을 잘 살린 화강석조각의 멋진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뒤돌아서 나오는데 한 젊은이가 따라오면서 "선생님 저기 안내판에 졸작이라고 써있는데요" 수 십 년 전일이라서 설마 지금까지 그 안내판이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런 일이 허다한 일이라서 걱정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